IMF 처방에 따른 구조조정 후 한국 정부는 "가장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했다"고 자랑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 덕분에 한국 경제의 체질이 개선됐고 삼성·현대차 같은 글로벌 기업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외환 위기 때 기업 투자를 못 하게 하고 헐값에 팔아먹는 바람에 이후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3만~4만달러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며 DJ정부의 IMF식(式) 구조조정에 대한 재평가를 공식 제기했다. 26일 출간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와 김우중(78) 전 대우그룹 회장의 대화 내용을 집필한 대담집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통해서다. 이 책은 신 교수가 4년간 서울과 베트남 하노이 등에서 김우중 전 회장을 20여 차례 만나 가진 인터뷰를 토대로 집필한 것으로 사실상 김우중 육성(肉聲)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우맨들의 특별포럼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당시 관료들은 본지 통화에서 "대담 내용은 철저하게 김우중 전 회장의 시각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또 "대우 빚을 처리하지 않았으면 나라가 망할 뻔했고, 당시 과감한 구조조정을 했기 때문에 2008년 선진국 금융 위기도 별 탈 없이 지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무리한 구조조정으로 헐값 매각"

김 전 회장은 "세계경제가 호황이었고 당시 아시아만 잠깐 금융 위기였을 뿐이었는데, 정부는 외국 금융기관과 컨설팅 회사들이 내놓는 보고서만 쳐다보고 얘기했다"며 "대우차를 공짜나 다름없는 13억달러에 팔아 많게는 210억달러를 손해 봤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이날 "미국은 2008년 금융 위기를 맞아 저금리를 유지하고 시티은행 AIG 등을 그대로 살렸다. 현재 한국 경제가 가계 부채에 시달리고 장기 저성장을 거듭하는 것도 IMF식 구조조정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 관료들은 "당시 다급했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조원동 당시 청와대 행정관(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미국의 경우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경제가 어려우면 통화를 찍어내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당시 돈을 풀었더라도 채권금융회사들이 돈을 빼가는 상황이어서 국가 디폴트(부도) 나는 상황으로 몰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덕분에 우리 경제 더 단단해져"

김 전 회장은 신 교수와의 대담집에서 "IMF식 구조조정이 아닌 수출주도형으로 위기를 극복했으면 지금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4만달러 돼 있을 것"이라며 "한국 경제의 설비 투자는 2005년이 되어서야 1996년 투자 수준에 복귀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봉균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구조조정을 철저히 한 덕분에 IMF를 극복할 수 있었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했어도 우리 경제가 탄탄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재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대변인은 "(김 회장은) 당시 시장 상황을 직시(直視)하는 게 중요하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