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베를레 지음|장혜경 옮김|라이프맵|1만4000원

책은 건물 폭파 협박을 받고도 직원들을 대피시키지 않은 한 독일 기업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기업이 직원들을 대피시키지 않은 것은 대피로 근무시간을 낭비하느니 직원들이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무리 폭파 협박이 거짓일 가능성이 크더라도 직원의 안전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기업이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업이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사소통 전문가 마르틴 베를레가 2년 만에 돌아왔다. 마르틴 베를레가 2012년 출간한 ‘나는 정신병원으로 출근한다’는 회사를 정신병원으로 묘사하며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번에 나온 ‘미치거나 살아남거나’는 그 후속편 격이다. 나는 정신병원으로 출근한다가 나온 이후 독일 전역의 독자들에게 받은 사연과 상담 내용 등이 충실하게 담겨 있다. 저자가 받은 상담메일만 2000여건이 넘는다고 한다.

300쪽이 넘는 책이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저자는 2년전 자신이 경고한 정신병원에서 아직도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환자’들에게 어서 서둘러 탈출할 것을 종용한다. 그는 정신병원이 왜 정신병원인지를 수많은 사례를 바탕으로 상세하게 설명한다. VIP 주차공간에 차를 댔다고 자기 차를 견인당한 직장인, 계부의 죽음은 규정에 없다며 휴가를 주지 않은 기업, 직원 부고를 ‘복사+붙여넣기’하는 인사팀, 소통을 늘리겠다며 직원의 개인공간과 사무실간 벽을 없앤 회사, 경영이 어렵다며 직원 월급은 깎으면서 임원들에게는 성과급을 몰아주는 기업.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일반적인 상식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기업에서는 효율성과 조직문화라는 방패를 앞세워 자행되는 일들이다. 오죽하면 저자가 “독일이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런 말을 덧붙여야 한다. 기껏해야 하루 16시간만 민주주의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은 빼야 한다. 그곳에선 논리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사무실 위층에 있는 사람이 무조건 옳다”고 말할 정도다.

마르틴 베를레는 이 책에서 정신병원에서 탈출하는 법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이미 전작에서 어느 정도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사실 생계가 걸린 문제에서 완벽한 해결책이란 나올 수가 없다. 결국엔 정신병원에서 살고 있는 직원들 스스로 탈출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결정할 문제다.

그나마 저자는 마지막에 희망을 이야기한다. 정신병에 걸린 기업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독일의 편의점 체인인 슐레커는 직원들의 연봉을 부도덕하게 억누르다 파산했다. 반면 직원들이 자신의 임금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한 드럭스토어 체인 ‘디엠(dm)’은 같은 기간에 승승장구했다. 저자는 정신병 기업이 무너진 자리에 합리적인 사고방식의 기업이 들어서면 인간적인 기업문화도 점차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그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만큼 지금 당장 정신병원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탈출을 권유한다.

마르틴 베를레는 독일의 사례만을 이야기하지만, 기업 이름이나 사연을 보낸 사람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랜 시간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에 익숙했던 한국의 상황은 독일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직장이나 기업에는 ‘중증’ 정신병원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어떨까. 탈출할지 미쳐갈지는 본인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