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묵은 숙제를 한 기분이에요. 그게 없었으면 아직도 면허 없이 쩔쩔매고 있었을 걸요."

전남 신안군 장산도에 사는 양연주(56)씨는 최근에야 운전면허를 땄다. 8년 동안 벼르고 별렀지만,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 대도시로 가는 게 너무 힘들어 포기한 적이 여러 번이다. 1979년 고향인 광주를 떠나 장산도로 시집온 양씨는 그동안 운송수단이 절실했다. 집에서 밭까지는 걸어서 30~40분이 걸린다. 그는 "경운기를 타면 너무 느리고 오토바이는 혼자밖에 못 타니 마을 사람을 우르르 데리고 일을 할 때는 불편함이 컸다"고 말했다.

(사진 맨 위) 대도시에 나와 운전면허 시험을 보기 어려운 섬이나 벽지에 사는 주민들이 도로교통공단이 실시하는 '찾아가는 출장학과' 시험 서비스를 통해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치르고 있다. (아래 왼쪽) 시민들이 운전면허시험장에 마련된 시물레이터를 통해 운전 연습을 하고 있다. 전국 14개 운전면허시험방에 실제 운전면허 시험과 같은 상황이 펼쳐지는 시뮬레이터를 도입했다. (아래 오른쪽) 한 장애인이 조로교통공단 직원의 도움을 받아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공단은 장애인 운전지원센터를 운영, 작년 11월 부터 올 5월까지 장애인 70여명이 운전면허를 딸 수 있도록 지원했다.

장산도 주민들이 운전면허 시험을 보려면 섬을 떠나 대도시인 목포나 광주로 가야 한다. 그러나 대도시에 연고가 없는 양씨 같은 사람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대도시에 지인이나 친척이 없으면 나가서 하룻밤을 자고 운전면허 필기나 실기 시험을 봐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고 했다. 이랬던 양씨가 최근 운전면허를 딸 수 있었던 것은 '찾아가는 출장 학과 시험' 서비스 덕분이다. 도로교통공단은 2012년부터 도서·벽지 지역에 찾아가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양씨는 "지난 4월 장산도에서 열린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섬 전체 인원 800여명 중 57명이 응시했다"고 했다.

도로교통공단의 '맞춤형 운전면허 취득' 서비스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양씨와 같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는 '찾아가는 출장 학과' 서비스, 장애인을 위한 '운전지원센터', 실제 도로 상황과 거의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는 '운전면허 시뮬레이터' 등이 인기다. 특히 운전면허 적성 검사 때 별도의 건강검진을 하지 않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활용하도록 연계해 비용을 절약하도록 한 것과 여권 발급 시 국제운전면허증을 함께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대표적인 협업 사례로 꼽힌다.

찾아가는 국민 중심 맞춤형 서비스

섬이나 벽지에 사는 국민이 좀 더 편리하게 운전면허를 딸 수 있도록 하자는 데서 도입된 '찾아가는 출장 학과' 시험은 2012년 도입 첫해에 1780명이 혜택을 누렸다. 2013년에는 1만4744명, 올해는 5월 말 현재까지 1만1531명이 이 서비스를 통해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치렀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사람이 많은 광주, 군산, 울진 등에는 아예 출장소를 만들어 매주 수요일에 필기시험을 치르고 있다"며 "사회적 약자뿐만 아니라 군부대, 다문화센터, 관공서 등 다양한 곳으로 서비스를 확대하는 중"이라고 했다.

거동이 불편해 차량 운전이 절실한 장애인들을 위한 운전지원센터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2013년 11월 부산 남부면허시험장에 처음으로 개소한 '장애인 운전지원센터'는 교통안전 교육, 학과·기능·도로주행 시험 등 운전면허 취득을 위한 이론과 기능 교육을 모두 지원한다. 특히 개인별 장애 유형에 맞는 운전보조장치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신체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체 장애 1급으로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김진수(48)씨는 "거동이 불편하니 스스로 운전하며 가족과 여기저기 다니고 싶은 꿈이 있었다"며 "운전지원센터를 통해 비교적 쉽고 편리하게 운전면허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이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고 기뻐했다.

전국 14개 운전면허시험장에 배치된 운전면허 시뮬레이터도 평소 운전 연습을 할 수 없는 처지의 시민들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시뮬레이터는 시험장의 환경과 유사하게 3D 그래픽으로 구성됐고 실제 차량처럼 기어를 조작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현장에서 바로바로 채점도 된다. 무료다. 장강휘(71)씨는 "그동안 비싼 돈을 내고 학원에서 주행 연습을 했는데 시뮬레이터를 통해 무료로 실제와 같은 연습을 하니 도움이 많이 된다"고 밝혔다.

◇국민 불편 최소화 위해 능동적 협업 활발

도로교통공단은 운전면허 취득 시 발생하는 여러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부처 간 협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협업이다.

그동안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받으려면 개인당 4000~8000원을 지불하고 병원에서 건강검진서를 발급받아 제출해야 했다. 그러나 작년 8월 도로교통공단이 5개 정부 부처와 협업을 통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관하는 건강검진 자료를 운전면허 적성검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만약 A씨가 2년 내 어느 병원에서든 건강검진을 한 적이 있으면, 운전면허 적성검사 시 별도의 자료를 제출할 필요 없이 전산 조회만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이 협업은 시행 10개월 만에 64만여명이 이용했고 건강검진 비용 32억원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도로교통공단은 작년 말 정부로부터 부처 간 우수 협업으로 인정받아 '정부 3.0 우수 사례'로 평가받기도 했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올 1월부터는 입대할 때 받는 징병신체검사 정보도 운전면허 시험 응시에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권 발급 때 국제운전면허증도 함께 교부받을 수 있도록 한 것도 협업의 우수 사례다. 공단은 올 4월부터 시·도·구청에 여권 발급을 신청할 때 국제운전면허증도 동시에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운전면허시험장 직원이 각 시·도·구청을 방문해 발급 신청서를 수거하고 여권 발급일에 맞춰 국제운전면허증도 함께 발급하는 서비스다. 현재는 서울 노원구, 동대문구, 중랑구, 강북구, 서대문구, 은평구, 구로구, 금천구, 영등포구 등 9개 자치구와 5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한 달 만에 900여명이 이 서비스를 운영하는 등 대표적인 협업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공단은 6월 23일부터 외국자본들이 국내에 투자 활동을 할 때 불편함이 없도록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외국인 투자지원센터 내 전담 부스를 만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해주고 있다. 조철원 도로교통공단 면허관리처 차장은 "외국 투자자들의 면허 발급을 위한 시간적 금전적 부담을 줄여 이들이 국내 투자 활동을 하는 데 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