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뇌물상납 관행은 건설업계의 고질적 적폐(積弊)다. 수주부터 하자보수까지 관계 기관 인허가가 필요할 때마다 건설사는 담당 공무원이나 평가위원에게 뇌물을 건넨다. 건넨 뇌물 액수보다 수백~수천배 많은 부당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뇌물상납 관행은 뿌리뽑기 어렵다. 뇌물수수 속성상 내부 고발이 있지 않는 한 적발하기 힘든 탓이다. 조선비즈는 내부 고발자의 제보로 사업 승인‧수주부터 설계변경·하자보수까지 건설사가 담당 공무원에게 상시적으로 뇌물을 제공한 정황을 포착했다.

회사 지시로 공무원에게 뇌물을 직접 전달했다고 주장하는 조모 전 동부건설 과장을 인터뷰했다. 조씨는 동부건설사 뿐만 아니라 다른 건설사도 비슷한 관행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대우건설, 대림산업, 금호산업 등 건설사들은 잇따라 뇌물 스캔들에 휘말렸다. 뇌물수수에 연루된 임직원과 공무원은 형사 처벌되고 건설사들은 입찰참가 제한 등 사업상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 “동부건설, 수주·설계변경부터 하자보수까지 뇌물로 해결”

경찰은 동부건설 직원이 건설공사 인허가 담당 공무원에게 수시로 뇌물을 상납했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뇌물이 살포됐다고 의심받는 공사 현장에는 아파트부터 예술문화 공연장, 어린이 교육시설까지 포함됐다.

서울 강동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은 동부건설이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심사위원을 관리하고 사업승인, 설계변경, 하자보수 전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에게 상시적으로 뇌물을 제공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조씨는 “회사는 고층아파트 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2009년 말 500만원을 담당 공무원에게 전달했다”며 “사업 인가조건이 나온 후 추가로 1000만원 넘는 향응과 금품을 담당 공무원에게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당초 해당 지자체는 동부건설에 공공하수관로 확대·개량 공사(9억5000만원 상당)를 사업인가 조건으로 제시했다. 조씨는 향응과 금품을 제공하자 담당 공무원이 사업인가 조건을 바꿔 하수관로 개량공사를 백지화했다고 진술했다.

조모 과장이 내부 보고를 위해 만들었다고 주장한 프리젠테이션 자료. 승인조건에 하수관 개량이 포함돼 있고 공사비를 9억5000만원으로 추정했다.

담당 공무원은 “용돈이나 향응은 받았을 수도 있지만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500만원은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부건설 관계자는 “해당 의혹에 대해 공무원 뇌물 제공 혐의로 경찰서에서 수사 받은 것은 맞다”면서도 “조씨가 주장하는 내용을 회사 내부에서 아는 사람이 없어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조씨는 또 경상북도 문화예술 공연장 보수비용을 줄이기 위해 담당 공무원에게 상품권 수백만원어치를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2012년 경상북도 소재 문화예술 공연장의 제어시스템 장애로 공연이 중단되는 등 하자가 생겨 장비를 교체해야 했으나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을 전달하고 하자보수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동부건설 관계자는 “경찰이 금품 전달 사실을 확인해달라고 요구했다. 담당 공무원이 150만원 상당 상품권을 전달 받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고 하더라. 당시 조씨 상사인 최모 차장 지시로 이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담당 공무원은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제기된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

동부건설은 공사 수주 단계에서도 평가위원에게 뇌물을 줬다고 조씨는 주장했다. 그는 인천 소재 어린이 교육시설을 수주하기 위해 심사평가위원을 관리하고 수주 후 뇌물을 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심사평가위원을 사전에 관리했다. 그 결과 동부건설은 1위로 평가 받아 공사를 수주했다. 수주 뒤 전모 상무와 함께 심사평가위원에게 수천만원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동부건설 관계자는 “수주 뒤 전모 상무와 조 과장이 심사평가위원에게 인사한 것은 맞지만 금품을 제공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조씨는 개인 비리로 회사에서 해고됐다. 앙심을 품고 악의적으로 제보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 건설사, 끊이지 않는 뇌물 스캔들

대우건설(047040)은 지난 4월 뇌물스캔들로 곤욕을 치뤘다. 대우건설은 경북도청 이전 사업 수주 과정에서 뇌물을 건넨 혐의로 입찰 제한을 받은지 2개월 만에 또 뇌물 사건에 연루됐다.

인천지검 특수부(부장 정순신)는 2009~2012년 대우건설 사업 수주를 도와주는 대가로 4000만여원 상당 금품과 접대를 받은 혐의로 조모(57) 인천시의회 사무처장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가천길병원 공사 수주 대가로 대우건설 관계자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정모(52) 전 가천길병원장 비서실장도 재판에 넘겼다.

대림산업, 금호산업, 코오롱글로벌 임원은 지난해 7월 열린 광주 총인처리시설 입찰 비리 항소심에서 2011년 당시 설계평가위원이었던 교수와 공무원에게 500만~4000만원을 건넨 혐의로 실형이 선고돼 법정구속됐다.

뇌물수수 관행은 중견 건설사도 예외는 아니다. 한신공영(004960)은 2012년 말 국방부 발주 공사를 따내기 위해 관련 공무원에게 1000만원 상당 뇌물을 건내려했던 사실이 드러나 6개월간 관급공사에 입찰하지 못했다.

정모 한신공영 부장이 뇌물 전달 혐의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으면서 한신공영은 국방부로부터 입찰참가 제한처분을 받았다. 대우건설과 한신공영은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