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코리아 대표 · '내 나이 마흔 오륜서에서 길을 찾다' 著者

칼과 칼이 부딪치고 피와 살점이 튀는 목숨을 건 진검승부의 세계에서 전승(全勝)을 거두었던 사나이의 경험과 세계관의 정수가 한 권의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일본 전국시대 말기 천하의 고수들을 칼 한 자루로 평정하였던 '검성(劍聖)'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가 쓴 '오륜서(五輪書)'는 손자병법,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더불어 3대 병법서로 일컬어진다.

오륜서는 승부의 철학을 담은 차원 높은 경영서이기도 하다. 오다 노부나가의 천하쟁패 군웅할거 시대에 태어난 무사시(1584~1645)는 열세 살 나이에 첫 승부를 겨루고 무사의 길로 접어들어 스물아홉 살이 되기까지 60여 차례의 결투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무사시는 승부의 중심은 몸이 아니라 마음임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기술과 무기는 부차적이고 이기겠다는 투지,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이 우선이다. 평정한 마음은 머릿속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수련에서 나온다.

오늘의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정신력과 투지가 부족하면 한계가 뚜렷하다. '마음이 비뚤어지면 칼도 비뚤어진다'는 검도장의 금언(金言)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공(內攻), 즉 투지와 정신력만으로는 옥쇄(玉碎)는 할지라도 승리는 없다. 무사시는 무사가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외공(外攻)이고, 끊임없이 정신력을 키우는 것은 내공이라고 말한다. 연륜이 쌓이고도 외공이 부족한 사람은 허술하고, 내공이 없는 사람은 천박하다. 내공과 외공이 조화를 이루어야 적을 이길 수 있는 것은 현대의 기업과 기업인도 마찬가지다.

'오륜서'의 소재는 칼싸움에서 상대를 먼저 베는 검법이다. 그러나 주제는 몸과 마음을 수련해 승리에 이르는 전략과 리더십, 생존과 자기 수련이다. 무사시는 칼싸움이라는 좁은 기술에서 출발해 승부사의 사생관, 상대방을 이기는 전략, 심신을 갈고 닦는 자기 계발에 이르는 폭넓은 관점으로 확장한다. 그가 말한 '병법의 도'는 단순히 '칼의 길'이 아니라 '승자의 길' '리더의 길', 나아가 '인간의 길'에 대한 지침을 준다.

'오륜서'는 1776년 도요타 가게히데가 쓴 무사시의 전기 '니텐기(二天記)'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5개의 바퀴로 구성된 책'의 뜻이다. 여기서 5개의 바퀴란 땅(地), 물(水), 불(火), 바람(風), 하늘(空)이라는 5가지 자연현상이다.

에도 막부시대 최고검사(劒士)로 꼽혔던 미야모토 무사시. 쌍검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무사시는 경영자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다.

땅은 기초이다. 기초를 다져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개인 차원의 실전 검술, 무기와 군사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역량, 필승 정신의 3가지가 병법의 기초를 이룬다. 일견 화려하나 실전에서 무력한 검술은 꽃만 있을 뿐 열매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은 유연성이다. 기초는 닦았는데 유연성이 없으면 정체되고 응용이 어렵다. 물은 어떠한 모양의 용기에 담는지에 따라 그 형태가 변화한다. 때로는 네모가 되었다가 동그라미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의 작은 물방울이 되었다가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바다가 되기도 한다. 검객의 마음과 태도는 물과 같이 유연해야 한다.

불은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이다.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전투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가 하면 한순간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작아지는 변화무쌍한 불과 매우 흡사하다. 홀로 싸우든 무리를 지어 싸우든 병법의 기본은 동일하다. 상대방의 미세한 변화도 꿰뚫어 볼 수 있는 날카로운 안목을 기르고 소소한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세심함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 수련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길러야 한다.

바람은 유행이고 경쟁자이다. 병법의 기본은 변함없지만, 흐름은 미세하게 변한다. 기본을 유지하면서 다른 유파 검법의 흐름을 파악하고 세상 변화를 따라가야 최고의 기량을 유지할 수 있다.

하늘은 가능성이다. 도의 경지는 무한하다. 병법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고, 하늘과 같이 안(비법)과 바깥(기본)의 구분이 없다. 따라서 병법의 도를 터득한 후에는 오히려 얽매이지 말고, 항상 새로운 경지를 추구해야 한다. 인간의 편협함을 자각하고 마음을 바르고 올곧게 꾸준히 연마하고 터득해야 지혜와 진리가 있는 '하늘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삶과 죽음의 냉엄한 현장인 칼싸움을 통해 역설적으로 무사시는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구도자의 삶으로 나아갔다. 그는 눈에 보이는 현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로 나아갔다. 서화와 조각에 능한 예술가였고, 불교와 노장사상을 깊이 이해한 철학자이기도 했던 무사시는 육체적 무기인 칼의 세계를 정신적 문화인 도(道)의 경지로 고양시켰다 그래서 '오륜서'는 지식이 아니라 실천학이면서 승부사의 본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가르침이 되었다. 오랫동안 일본은 물론 서양에서도 '전략 경영의 고전' '인간 완성의 서(書)'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오늘날까지 지식인들과 기업인들 사이에서 애독되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