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포스코 회장.

“동부제철(인천공장) 인수와 재무구조 개선은 안 맞는 부분이 있지 않느냐. 그게 걱정이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지난 1일 산업은행이 제안한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패키지 인수건에 대해 이 같은 입장을 보이자 철강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권 회장이 동부제철 인천공장 인수에 부정적인 인식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됐기 때문이다. 산은의 파격적인 공동인수 제안으로 포스코가 인수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듯한 동부제철 인천공장 매각 건의 향방이 다시 불투명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철강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지난달 14일 취임 일성으로 ‘재무구조 개선’을 지목한 권 회장이 무리한 인수합병(M&A)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의중을 재확인했다는 대목이다. 지난달 27일 산은측의 공식 인수제안이 접수된 이후 포스코가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날 권 회장의 발언이 처음이다. 포스코는 산은측과 이달 초부터 한달가량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에 대한 매각 실사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재무구조 개선과 맞지 않다’는 권오준 회장이 산은측 제안에 부정적인 사내기류를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의 재무라인에서는 산은측 제안에 응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재무라인은 ‘포스코가 매각 실사에 응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산은 쪽에 ‘마치 매각제안을 받아들여 매각 실사에 나선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강력 항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철강업계 일각에서는 이날 권 회장의 발언을 단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반응도 있다. 매각 실사 초기에 나타나는 ‘협상 제스춰’라는 성격이 강하다는 얘기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권 회장에 재무구조 개선에 중점을 두겠다고 천명한 만큼 산은측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발생하는 재무적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권 회장의 발언은) 초기에는 최대한 신중한 자세를 취하는 게 본격적인 협상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부제철 인천공장 전경.

일각에서는 동부 등 중견그룹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특히 산은이 동부제철 인천공장의 지분 70%를 재무적 투자형식으로 인수하겠다고 나선 배경을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동양사태가 터졌을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금감원장, 산업은행장 등이 청와대에 모여 동양그룹 부도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했지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대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성과를 조기에 내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방침이 산은의 공동인수 제안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에서는 ‘동부제철 인천공장 인수에 시너지 효과가 없다’는 포스코측 주장에 비판적인 시선이 있다. 인천공장의 주력 상품인 컬러강판을 생산하는 포스코 계열사 포스코강판은 생산규모가 업계 3위(약 30만톤) 수준이다. 업계 2위인 인천공장(45만톤)을 인수하게 되면 업계 1위인 유니온스틸(약 65만톤)을 추월하게 된다. 2011년부터 2년 연속 영업손실을 보다 지난해 25억원 정도의 영업이익을 낸 포스코강판이 꾸준한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동부제철 인천공장을 인수할 경우, 수익구조의 안정화를 이룰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철강업계 관계자는 “3위 업체가 시장지배력을 갖게 되는 1위 업체로 발돋움하면 생산량 조정에 따른 가격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등 여러 메리트가 많다”면서 포스코측 주장을 반박했다.

결국 권 회장의 입장표명은 동부발전당진 매입 협상을 유리하기 이끌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의 5차 전력산업기본계획에서 민간석탄발전업자로 지정된 동부발전당진은 올해 발전소 착공이 가능해 매각가치가 약 4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로부터 발전사업자 지정을 받지 못한 포스코에너지는 동부발전당진에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권 회장의 입장 표명은 향후 협상과정에서 어떻게든 협상력을 발휘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정도로 읽힌다”면서 “포스코의 관심은 산은의 공동인수로 재무적부담이 덜어진 동부제철 인천공장보다 동부발전당진의 인수가격을 낮추는 데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