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늘 새봄이어서 좋습니다. 다른 계절에는 붙이지 않은 '새'자를 유독 봄에만 붙여 말하는 이유는 아마도 봄을 새로운 시작으로 여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새싹과 새순이 올라오는 계절이 봄이니까 그냥 봄이 아니라 새봄이라고 해야 제맛이 나고, 겨울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어서 좋습니다.

봄 하면 노란색, 노란색 하면 개나리입니다. 이른 봄에 잎보다 먼저 피는 꽃의 색은 대개 다 노란색입니다. 불이라도 밝혀놓은 듯 곤충의 눈에 잘 띄는 색이라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개나리라는 이름이 '개+나리'일 것으로 생각해서 백합(나리)과 비슷하지만 조금 못한 꽃이라고 풀이합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실학자 유희가 쓴 『물명고』에서는 나리를 '개날이'로 표기하고, 개나리를 '개나리나모'로 표기하는 점으로 미루어 개나리는 '개+나리'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개나리

개나리에 대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도 개나리에 대해 잘 모르고서 실수할 때가 많으니 글을 쓰는 기자분이나 블로그를 운영하는 일반인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일반적인 꽃들과 달리 개나리는 암술의 길이에 따라 장주화와 단주화라는 개념의 꽃을 피웁니다. 암술이 수술보다 길면 장주화, 짧으면 단주화로 봅니다. 암꽃과 수꽃이 아닙니다.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그 사실을 모르면 계속해서 개나리의 꽃을 암꽃과 수꽃으로 말합니다. 혹자는 장주화와 단주화가 암꽃과 수꽃의 역할을 한다고도 하지만 그 역시 잘못된 표현입니다. 수꽃의 역할을 한다면 꽃가루만 제공하고 결실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결실하니까 수꽃이라고 하지 않고 단주화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히려 단주화에서 결실이 더 잘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암꽃은 수술이 거의 기능하지 못하는 꽃이고, 수꽃은 암술이 거의 기능하지 못하는 꽃을 말합니다.
장주화와 단주화는 암술과 수술이 모두 성적으로 기능하는 꽃이기 때문에 생겨난 개념이고, 동등한 성 지위를 가지며 둘 다 결실하므로 양성화의 범주에 드는 꽃입니다.

개나리의 장주화
개나리의 단주화

어떤 이는 장주화와 단주화가 함께 있어야 수정이 잘 되는데, 개나리를 꺾꽂이 같은 무성생식으로 번식시키다 보니 수꽃(또는 단주화)이 많아져서 열매 맺는 것을 보기 어렵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릅니다. 장주화나 단주화 중 어느 한 종류의 꽃만 있다 하더라도 서로 다른 개체 간에 꽃가루가 교환된다면 결실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개나리의 열매를 보기 어려운 이유는 유전적으로 거의 비슷한 형제들을 심어놓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개나리 자체가 워낙 결실률이 떨어지는 종이라서 그렇기도 합니다.

개나리의 열매

여기까지는 그래도 불편하지 않은 진실입니다. 불편한 진실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우리는 봄에 노랗게 피는 것이면 다들 “개나리가 피었네!” 합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어떤 것이 개나리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개나리와 생김새가 비슷한 도입종과 새로 개발한 품종이 워낙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른 데에 있습니다.

개나리의 학명은 Forsythia koreana입니다. 학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개나리는 세계에서 오직 한국에만 있는 자랑스러운 식물입니다. 그런 개나리의 최대 약점은 국내에 자생지가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특산식물인데도 발견된 자생지가 없다니 엄청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나리는 표본자료로 계룡산과 충북 초평면에서 채집한 기록이 있으며 국립수목원과 홍릉수목원에 심어져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개나리를 한국특산식물로 발표한 일본의 나카이 박사도 국립수목원이나 홍릉수목원의 것을 보고 논문을 작성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어떤 것을 개나리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현재까지 밝혀낸 것들은 모두 산개나리의 자생지일 뿐 개나리는 한 군데도 없습니다.
그런데 2010년에 학회지에 개나리의 자생지가 발견되었다는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큰 이슈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부 12개체를 발견하였고, 그중 3개체는 어린 나무이며, 그곳을 왜 자생지라고 볼 수 있는지, 그곳의 나무들을 어떤 이유로 개나리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근거는 하나도 제시되지 않은 논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건 논문이 아니라 보고문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어쨌든 네 명의 국내 학자가 발표한 그 논문에는 자신들이 발견한 장소의 GPS좌표를 공개하였기에 머나먼 경북 청송까지 가서 확인해봐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그런데 역시나였습니다. 그곳은 사람과 차가 다니는 길에서 불과 1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고, 오래된 나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길 주변에는 심어놓은 개나리 종류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다만 영양이 부족한 개천가의 경사지에서 자라서 그런지 그곳의 꽃은 조금 작고 성글게 피며 밝은 노란색인 점이 약간 특이해 보였습니다.

혹시 그 나무들을 개나리라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곳을 자생지라고 주장하기에는 굉장히 무리가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학계에서조차 이 모양이니 개나리의 불편한 진실은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생지로 발표된 곳의 개나리

다음으로 기대를 걸어볼 만한 곳이 경북 김천시의 직지사였습니다. 그곳 경내에는 수령이 200년이나 되었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개나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면 진짜 개나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다시 발품을 팔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개나리는 정말 많이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200년 된 개나리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직지사에 핀 개나리

마침 그곳을 지나던 스님께 여쭈니 그 나무는 죽었다고 했습니다. 궁금해하는 이가 먼 데서 찾아올 줄 모르고 그새 돌아가신 모양이었습니다. 죽은 나무라도 좋으니 위치 좀 알려달라고 했더니 따라오라고 하시더군요. 스님의 고무신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본 그곳에는 밑동이 잘려나간 고목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죽었다고 한 그 나무 밑동에서 새 가지가 비쭉 올라와 딱 한 개의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회춘(回春)까지! 감탄하며 열심히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점은 없어 보였습니다. “개나리면 그냥 개나리인 거지 뭐!” 하고 툭 던지듯 내뱉은 스님의 말씀에서 성철 스님의 명언이 번쩍였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개나리는 개나리요, 진달래는 진달래로다.’

200년 된 개나리에 핀 꽃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국립수목원과 홍릉수목원에서 피는 개나리를 개나리의 기준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청송 개천가에 피는 개나리도, 직지사 경내에 피는 개나리도, 응봉산 팔각정에 피는 개나리도 모두 다 같은 개나리라고 생각하면 이 아름다운 새봄에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다만 국내에는 아직 개나리의 자생지가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 누군가 개나리의 자생지를 발견한다면 남북통일만큼이나 대박이라는 것! 그 사실만을 믿고 병아리떼 뿅뿅뿅 봄나들이 갑니다.

국립수목원의 개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