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처음 공식 발표된 공공 부채가 82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그동안 건전하다고 자부했던 국가재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 부채는 466조7000억원이지만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 부채까지 합산해보니 1.6배(부채비율 기준)로 껑충 뛴 것이다. 재정 전문가들은 "공기업 돈을 정부가 쌈짓돈처럼 이용해 경기 부양에 동원한 결과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으로 돌아왔다"며 "위기가 다시 닥치면 버틸 여력이 크게 줄어든 데다 부채가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불어날 수 있기 때문에 획기적인 부채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공기업 동원해 경기 불씨 지폈던 정부… 더 이상은 안 된다

2000년대 이후 정부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 이상으로 공기업들을 동원해 경기의 불씨를 살려 왔다. 공기업의 빚은 나라 살림에는 포함되지 않는 데다 정밀하게 집계되거나 개별 부처들이 관리 감독을 하지 않아 쌈짓돈처럼 쓰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가 2009년 28조원이 넘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글로벌 금융 위기에 대처하고, 작년 19조원에 달하는 추경을 편성해 경기 부양에 나설 당시 드러나지 않는 공기업들의 '지원 사격'은 이보다도 큰 규모로 일어났다는 것이 대다수 재정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공기업들은 경기가 안 좋으면 인력 채용을 늘리거나 공공요금을 올리지 않아 적자를 보고, 경기 부양용 SOC사업을 자체 비용으로 추진하는 식으로 경제 활력을 지키는 데 기여해 왔다. SOC사업 부담이 큰 LH공사의 부채가 2008년 이후 5년 새 50조원 넘게 불어나고, 전기요금이 수익성에 직결되는 한국전력의 부채가 45조원 넘게 늘어난 것은 모두 이런 이유에서였다.

정부는 경기 부양의 부담을 공기업에 미룬 탓에 자체 살림을 나름대로 건실하게 유지했다. 정부 부채만 계산하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은 39.7%(2012년 기준)로 일본(219%), 미국(106%), 영국(104%) 등 선진국보다 양호하다.

하지만 해외 신용 평가사들과 국제통화기금은 우리나라의 불어나는 공기업 부채 문제를 2~3년 전부터 간헐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IMF도 공기업 부채가 결국 정부 부채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공기업 부채를 합쳐 공공 부채를 산출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 결과 우리나라의 공공 부채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복지 공약 이행 등 필요한 돈 산더미…앞으로가 더 문제

더 큰 걱정거리는 복지 공약 실천을 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재정 부담이다. 복지 예산은 올해만 105조9000억원이 들어간다. 박근혜 정부 내내 연평균 7%씩 불어날 예정이다. 2016년에는 120조원을 넘어서고 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17년에는 127조5000억원에 달한다. 익명을 요구한 전 정부 고위 관계자는 "현 정부가 약속한 공약만 지키려 해도 공공 부채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빨리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공공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는 매우 빨라지고 있다. 정부가 계산한 공공 부문 부채만 해도 2012년 한 해 동안 67조8000억원이 늘어났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공공 부채에는 포함되어있지 않지만 공무원·군인연금 지급 부담을 위한 충당부채는 2011년에 342조1000억원이었다가 2012년 436조9000억원으로 1년 사이에만 94조8000억원이 불었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는 "이번 발표로 공기업 부채가 급격하게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 해외에서 우리나라 경제의 기초 체력을 냉정하게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기축통화를 쓰지 않기 때문에 공공 부채를 선진국 평균치보다 한참 낮게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