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서울 상암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TV조선의 토크쇼 '강적들' 녹화 현장.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7도까지 떨어진 이날 스태프들은 실내에서도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반면 무대 위의 출연자들은 얇은 방송용 의상만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각자 대본만 들여다보던 출연자들은 큐사인이 떨어지자 쉴 새 없이 '말(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추위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종편의 예능 프로그램은 전문가들이 나서서 시청자에게 웃음과 지식을 전하는‘인포테인먼트’형 방송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TV조선‘법대법’방송 장면(사진 위)과‘강적들’연말 특집 녹화를 위해 스튜디오에 모인 출연진.

이날의 대화 주제는 '2013년 월별 뉴스 총정리'. 강용석 변호사와 이준석 전(前)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김성경 전 SBS 아나운서, 박은지 전 기상캐스터 등 출연자 7명이 박근혜 대통령 취임, '라면 상무' 사건, 연예인 도박, 장성택 숙청 등 올해를 떠들썩하게 했던 12가지 톱뉴스를 놓고 자유 토론을 벌였다. 주제만 보면 '심야토론'(KBS)이나 '100분토론'(MBC)과 별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서로 비판하고 면박을 주면서도 녹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예능의 포맷으로 시사(時事)를 다루기 때문이다.

'종편 스타일' 예능의 등장

종합편성채널(종편)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식과 색깔의 '종편 스타일' 프로그램들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소위 '황금시간대'로 불리는 주말 저녁이나 평일 밤에 연예인들이 나와 잡담을 주고받는 식의 프로그램은 종편에서 보기 힘들다. TV조선 '홍혜걸의 닥터콘서트' '법 대 법' '살림9단의 만물상' 등 정보(information)와 재미(entertain ment)를 동시에 추구하는 소위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형(型) 프로그램이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JTBC '썰전', MBN의 '속풀이쇼 동치미' '고수의 비법 황금알',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 등도 같은 유형으로 분류된다.

특히 이 프로그램들은 밤 11시에 주로 편성돼 이 시간대는 지상파를 포함해 하루 중 시청률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간대로 부상했다.

중장년 시청자들 사이에선 10대 청소년들에게 타깃을 맞춘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다. '강적들' 시청자 박건영씨는 프로그램 게시판에 '원래 오락 프로그램 자체를 보지 않았는데 (강적들은) 출연자 각자의 개성과 주장이 있고 위트와 유머도 있어 좋다'는 글을 올렸다. 김남호(55)씨는 "지상파 오락 프로에 가수·개그맨들이 나와 애들처럼 술래잡기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 적도 있다"며 "종편에는 오락 프로에도 전문가가 많이 나오고, 정치·시사나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줘 성인(成人)들한테 적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상파가 외면한 시청자층의 재발견

도식화된 지상파 프로그램 형식을 거꾸로 뒤집어 진실을 파헤치는 시도도 종편에서는 활발하다. 채널A '먹거리 X파일'은 지난 수십년 지상파 방송사들이 '우~'하는 젊은 여성들의 탄성을 효과음으로 깔며 각종 '맛집' 소개에 치우쳤던 포맷을 뒤집어 식당의 위생 상태나 음식 재료 등을 점검하는 고발성 프로로 화제를 모았다. JTBC '히든 싱어'는 아이돌 그룹 일색인 지상파 음악 방송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종편 프로그램 형식을 지상파가 모방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엄마와 딸 사이 추억을 재구성해 모녀의 정(情)을 되새겨보는 '모녀기타'(TV조선·종영)와 비슷한 포맷의 '맘마미아'(KBS2)나 조부모와 손자들이 등장해 효(孝)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오냐오냐'(TV조선·종영)와 비슷한 '오마이베이비'(SBS·방송 예정) 등이다.

해외에서 제작한 고품격 다큐를 꾸준히 방송하는 것도 종편의 특징. '미국을 일으킨 거인들'(TV조선) 등 소위 지식층 마니아들이 존재하는 해외 다큐를 지상파들은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외면해 왔다. 하지만 종편의 등장과 함께 고품격 다큐를 원하는 시청자들의 요구도 채워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는 "신문사의 브랜드 이미지까지 더해져 종편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도가 높게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