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윤 금융위원장이 27일 금융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신 위원장은 무한경쟁환경을 조성해 금융사의 혁신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27일 발표한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일명 '금융비전')을 통해 국내총생산(GDP)에서 금융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7%에서 10년 후 1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경쟁과 혁신을 촉진해 금융업 규모를 키우고 기술신용 평가기관 등을 만들어 실물경제에 필요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또 금융시장 안정과 소비자 보호를 강화해 금융업이 국민의 재산을 지키고 서민을 지원하는 버팀목이 되도록 육성할 계획이다.

그러나 연금자산을 장기투자 자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은 금융위가 단독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어서 정책금융기관 기능 재편처럼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기술신용 평가기관을 설립해 금융회사의 여신심사에 반영하도록 하겠다는 방안도 실효성이 떨어져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 규제 완화해 금융사 새 먹거리 창출 유도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금융비전을 발표하면서 "총 68차례의 업계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을 수렴했다"며 "금융업계의 애로사항을 최대한 반영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금융회사가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국내 은행은 해외지점의 업무범위가 현지법령이 허용하는 수준까지 확대돼 현지 고객에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선진국의 금융규제는 우리와 비슷하거나 더 엄격하지만 신흥국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경우가 많다"며 "신흥국에 지점을 가진 은행들은 현지 수요에 맞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내년 상반기에 은행, 증권 등 계열지주 계열사 간 고객정보를 고객 동의를 받고 나서 공유하도록 해 은행 PB와 증권사 PB를 연계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했다.

보험사들은 100세 시대를 대비한 다양한 노후상품을 만들 수 있다. 금융위는 고령층에 필요한 간병·장례서비스·일상생활 지원 등을 보장하는 종신건강종합보험(가칭) 출시를 허용할 계획이다. 이 보험은 현금대신 현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또 단기소액보험(보험금 1억원, 보험기간 2년 이내의 보험) 도입을 검토하고 보험상품을 한 곳에서 조회하고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보험 슈퍼마켓도 구축할 계획이다.

증권사들은 상품개발 인허가 단계가 대폭 축소돼 시장상황에 맞는 상품을 출시하기가 편해진다. 지금은 인허가가 48개로 구분돼 있고 여러 건에 대해 인가를 신청해도 하나씩 승인을 해준다. 금융위는 비슷한 인허가는 하나로 통합하고 신청이 여러 건 들어오면 한꺼번에 심사할 계획이다.

◆ 경쟁·구조조정 촉진해 경쟁력 강화

금융위는 각종 금융규제를 완화하는 동시에 금융회사간 경쟁을 유발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곳은 제재해 금융회사가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신 위원장은 "새로운 시장을 찾아나서는 금융회사엔 무한한 기회를 주고 그렇지 않은 회사는 경쟁의 압력을 통해 움직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2016년부터 은행 계좌이동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계좌이동제는 고객이 신규 계좌를 개설한 은행에 자동이체를 신청하면 기존 계좌에 연결된 각종 공과금 이체까지 자동으로 이전되는 제도로 유럽(EU)과 호주, 영국, 네덜란드 등에서 시행 중이다. 지금은 은행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은행 계좌에 연결된 각종 자동이체를 옮기는 게 번거로워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계좌이동제가 도입되면 은행들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금리나 수수료를 경쟁적으로 낮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적이 저조한 증권사의 구조조정도 활발해진다.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이 높아도 수년간 영업적자를 기록한 증권사는 제재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그동안 증권사들은 실적이 안 좋아도 증권업 라이선스를 유지하기 위해 버티는 경우가 많았는데 새로운 역할을 찾지 않으면 안되도록 꾸준히 압박하겠다"고 말했다.

◆ "연금자산 투자자금으로 활용·기술평가 구축은 비현실적"

금융위는 2020년에 약 200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이는 연금자산 중 일부를 자본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관련 부처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으로 나뉘어 있어 정책금융기관 기능재편처럼 용두사미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융위는 올 초 산업은행·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정책금융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의 기능을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부처가 다른 수출입은행(기획재정부 관할)과 무역보험공사(산업통상자원부)는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금융위 산하에 있는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만 재통합하는 안을 발표해 '반쪽 개편안'이란 지적을 받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퇴직연금은 고용노동부 소관이라 금융위가 손댈 수 있는 부분은 제한돼 있다"며 "총리실이나 기획재정부가 주도권을 갖고 연금 시장을 전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연금자산을 활용하겠다는 구상은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신용정보회사가 개인의 신용정보를 금융회사에 제공하면 금융회사가 이를 근거로 대출을 해주는 것처럼 기술평가를 강화해 기술금융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기술신용 평가기관이 평가 정보를 금융회사에 제공하면 금융회사가 대출 심사 등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술평가기관이 대출 가능업체로 선정해도 부실이 나면 은행이 다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이 정보를 활용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기술지식 평가는 시장에서 역동적으로 일어나야 하는데 제3자가 가치를 평가하고 이를 근거로 대출을 하라는 것은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발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