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자금 지원제도가 중소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책자금 지원을 받는 중소기업이 수혜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중견기업으로의 성장을 스스로 억제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2일 발표한 ‘중소기업 성장과 정책금융 관련 제도의 개선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중소기업 정책자금 제도가 중소기업의 효율적인 성장을 지원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정책자금 제도가 중소기업의 ‘성장’보다는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중견기업으로 가는 성장 사다리를 놓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고서가 인용한 IBK 경제연구소 자료를 살펴보면 2000년 이후 11년 동안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중소기업 비율은 1% 정도였다. 보고서는 중소기업이 자금 지원을 계속해서 받기 위해 자회사 설립, 기업 쪼개기, 해외 진출 등의 방법으로 중견기업으로의 성장을 회피한다고 분석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과 신용보증기금의 정책지원을 받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영업이익과 1인당 임금, 종사자 수, 연구개발비 등을 분석한 연구를 보면 금융지원이 중소기업의 수익성이나 성장성을 높이지 못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올해 한국개발연구원이 발표한 ‘중소기업 정책금융의 현황과 평가’ 보고서도 같은 결과를 내놨다.

기관 간 중복 운영이 심해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는 점도 문제였다. 현재 정책자금을 운용하는 곳은 중소기업진흥공단·신용보증기관·정책금융공사와 중앙정부, 지자체 등이다. 보고서는 특히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지역신용보증재단 간 중복 보증이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2011년에서 2012년 6월 말까지 정책금융공사로부터 금융지원을 받은 기업의 약 69%가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 등을 통해 중복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신용보증재단도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과 각각 8649억원, 4552억원 규모로 중복 보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정책자금 운용 기관간 중복지원으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중소기업 정책금융 비중이 높은 편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책자금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5.8%로 한국과 비슷한 소득 수준인 포르투갈(약 3%)보다 월등히 높았다. 미국·네덜란드·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정책자금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이하로 미미했다.

보고서는 성과가 부진한 정책자금 제도를 폐지하고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추진할 때 지원 기간을 명시하는 '정책 일몰제'나 '정책 졸업제'를 도입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 객관적인 중소기업 정책자금 평가 기관을 둬 지원 제도의 성과에 따라 정책자금 지원기관이 운용할 수 있는 금액을 조정하는 권한을 줄 것을 제안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중소기업진흥공단은, "국가 경제와 고용을 떠받드는 중소기업이 계속 탄생하고 성장하려면 정책자금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중소기업계는 이번 보고서를 낸 한국경제연구원이 전경련 산하기관으로 자금 동원력이 큰 대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과정에서 중소기업 정책자금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