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에서 요청한 사항을 충분히 대변하도록 노력하겠다.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 동반성장 및 사회적 책임 이행에 노력해달라.” (4월 30대 그룹 사장단 간담회)

# “기업의 애로사항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말씀해 달라. 경제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기업이 함께 뛰자.” (10월 30대 그룹 사장단 간담회)

윤상직(앞줄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013년 하반기 30대 그룹 사장단 투자·고용 간담회'를 주재한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올해 30대 그룹 사장단을 두 차례나 직접 만나 기업들의 투자 활성화를 독려했다. 새 정부 국정과제인 ‘고용률 70%’ 달성과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기업 투자를 둘러싼 불확실성 제거를 위해 외국인투자촉지법·관광진흥법 등 100여건의 경제활성화 관련 입법이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30대 그룹은 올해 계획한 155조원 규모의 투자와 14만명의 고용 계획이 100% 이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주무장관과 주요기업 사장단의 약속과는 반대로 국내 대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20일 기업경영성과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1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총 477조원. 3년 전인 2010년에 비해 44% 늘어난 규모다.

곳간에 ‘총알’은 쌓여 있어 재무구조는 탄탄하지만, 그만큼 투자에는 소극적이라는 방증이다. 입법 현실화 여부를 떠나 민주당 등 야당 일각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사내유보금에 대해 과세하도록 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기업별로는 ‘퍼스트 무버’를 지향하는 삼성전자가 137조8000억원으로, 2위 현대자동차(48조원)의 3배에 달해 단연 압도적이었다. 이어 포스코 41조5000억원 → 현대모비스 18조5000억원 → 현대중공업 17조5000억원 → 기아자동차 16조1000억원 → 롯데쇼핑 15조4000억원 → SK텔레콤 15조3000억원 → SK이노베이션 15조원 → LG전자 11조9000억원 순이었다. 주요 제조업체들이 금융기관처럼 수십조원의 돈을 쌓아놓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이유로는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탓이 가장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회복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불황의 긴 터널을 완전히 지났다고 보긴 힘들다는 얘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세계 경제 위기라는 ‘메가트렌드’를 지나는 시점이지만, 기업 경영 환경은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상황이다”고 분석했다.

기업들도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 필요성을 이유로 들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경기 변동에 취약한 자동차 업계 특성상 가동률 저하, 재고 증가에 따른 안전장치 차원에서 유보금을 축적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유럽발 경제위기 탓에 경기 불확실성이 더 커진 게 유보금이 늘어난 이유”라고 설명했다.

경색된 국내 정치 상황도 기업의 손발을 묶고 있는 한 원인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 경제 5단체장이 처음으로 여야 원내대표를 직접 찾아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를 촉구했지만, 국가 기관의 대선 개입 특검 도입 문제 등을 두고 여야의 대치가 이어지면서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오너 리스크’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부분. 총수가 구속 상태에 있는 SK나 한화 등은 일상적인 경영에는 큰 문제가 없다하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위험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결정은 사실상 유보된 상태다. 최태원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이끌고 있는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한국 산업계에서 오너의 역할은 리스크를 안고 긴 안목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인데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한편 재계 맏형인 삼성의 경우 잇따른 계열사 사업구조 개편 등 3세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재계는 관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