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경질에 이어, 그룹 간섭까지…’

건설업계 다크호스로 혜성처럼 등장하며 승승장구해온 삼성엔지니어링이 최근 대표이사 경질에 이어 그룹의 경영 관리 점검까지 받으며 체면을 구기고 있다.

삼성그룹은 실적 부진과 공사 현장 사고의 책임을 물어 8월 박기석 전 대표를 경질한 데 이어, 삼성전자와 삼성중공업에서 경영혁신 인력 20여명을 삼성엔지니어링에 투입키로 하는 등 체질 개선에 나섰다.

국내 건설사 중 중동에서 가장 많은 사업을 수주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삼성엔지니어링이 어쩌다 그룹으로부터 경영혁신 코치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왔을까.

◆ 혜성 같은 등장

삼성엔지니어링은 엔지니어링 업계에서는 국내는 물론, 일본과 유럽업체에 뒤쳐진 2류 업체였다. 대형 프로젝트에는 입찰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룹 내에서도 건설업을 영위하는 삼성물산과는 몸값이 다른 위치였다.

업계에서도 후발주자였던 삼성엔지니어링의 입지는 2007년 이후 달라졌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업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화학회사인 사빅 계열사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성공적으로 공사를 수행한 뒤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사우디 아람코, 아랍에미레이트(UAE) 애드녹 등도 삼성엔지니어링에게 수주에 참여해 달라는 러브콜을 보내왔다.

삼성엔지니어링 본사

고유가로 오일머니가 넘쳐난 중동지역의 플랜트 시장 호황을 등에 업은 삼성엔지니어링은 무서울 정도의 성장가도를 달렸다. 2008년 12억9897만달러에 불과했던 삼성엔지니어링의 해외 건설 수주액은 2009년 92억9207만달러로 7배 증가했고, 2012년에는 105억달러를 기록했다. 2011년 해외건설 수주액 591억달러 중 삼성엔지니어링의 수주액은 71억달러로 업체별 순위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회사 덩치도 급격히 커졌다. 2003년 1조1300억원이던 매출은 2009년 4조원까지 늘었다. 주가 역시 3000원을 소폭 웃돌던 것이 2009년 11만원까지 약 30배가량 상승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삼성그룹 내 건설계열사도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지난 2011년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둘째 사위인 김재열 제일모직 사장이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삼성엔지니어링 내부에서는 ‘오너 일가가 왔다는 것은 회사의 성장을 그룹에서 인정한다는 의미”라는 말이 돌면서 직원들 사이에선 자긍심이 넘쳐나기도 했다.

당시 그룹 내 형님 뻘 건설계열사였던 삼성물산(028260)은 금융위기 여파로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사장의 삼성엔지니어링 이동은 그룹 내 건설계열사 간 힘의 이동을 의미했다.

계열사 내에서 뿐 아니라, 건설업계에서도 삼성엔지니어링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빠른 속도의 성장과, 그에 걸맞은 직원 급여와 처우는 경쟁사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회사가 급성장하며 해외 플랜트 시장에 필요한 인력들은 삼성엔지니어링이 쓸어가다시피 했다. 신규 채용은 물론 경력직 채용에 있어서도 파격적인 대우를 해, 한때 플랜트 업계에서는 최고로 선망되는 직장에 꼽히기도 했다.

◆ 백조에서 미운 오리로

하지만 삼성엔지니어링의 승승장구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2년 들어 수주한 각종 공사에서 문제점이 드러나면서부터다.

대표적으로 2011년 사우디 샤이바에서 수주한 2조9311억원 규모의 가스전 프로젝트는 인력·자재 확보 어려움에 따른 공기 지연, 설계변경 등으로 2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2012년 4분기 당기 순이익이 25.9% 급감하면서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이후 올해 1분기 2197억원의 영업손실 이후 3분기 연속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3분기에는 역대 최고 규모인 7470억원의 손실이 났다. 2012년 2분기 이후 총 1조4950억원의 손실이 반영됐다.

1조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하다 보니 회사의 재무상황도 악화하고 있다. 지난 3분기 말 삼성엔지니어링의 부채비율은 648%, 총 차입금은 1조5727억원이다. 해외 수주를 통한 성장 만능주의가 부실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업계의 지적도 잇따랐다.

급격한 성장 뒤 갑작스레 드러나기 시작한 현장 부실은 회사의 그늘이 되기 시작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저가 덤핑 수주 문제와 현장 관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현재 1조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 중이다.

◆ 권토중래는 언제

구겨진 체면을 다시 펴기 위해 삼성엔지어링은 마부작침(磨斧作針·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 정도로 끈기있게 노력함)의 심정으로 회사 재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부활의 날갯짓을 하기엔 쉽지 않아 보인다. 공격적 성장전략하에 수주했던 해외 프로젝트들의 손실이 예상보다 훨씬 큰 데다, 여러 사업장에서 추가 손실의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증권 조윤호 연구원은 “당분간 대규모의 손실 처리는 없겠지만 올해 들어 공사기간 지연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은 불안요소”라고 분석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최대한 보수적으로 원가율을 추정하고 있지만 공사 수행능력이 계속해서 저하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나머지 프로젝트에서 공기 지연에 따른 손실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연구원은 “손실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주 물량은 전체 공사 잔고의 20% 수준”이라며 “막대한 손실·공기 지연 등은 향후 추가 수주 경쟁력 하락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추가 원가 상승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삼성엔지니어링은 올해 실적 전망을 대폭 수정했다. 매출 규모는 11조6000억원에서 10조2000억원으로 낮췄다. 영업이익은 9800억원 적자, 당기 순이익은 6800억원 적자로 예상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우선 재무 구조를 개선해 시장의 신뢰와 내실을 회복한 뒤 양질의 수주를 통해 업계 장악력을 다시 키워가기로 했다.

우선 급하게 보유 자산 매각에 나섰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서울 도곡동 옛 사옥인 SEI타워와 역삼동 글라스타워 지분 34%를 매각하기로 했다. 해당 부동산을 처분하면 1600억원 가량의 현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수익성이 큰 사업 위주로 보수적으로 수주하고, 회사 내에서는 유동성 확보를 위해 자산 매각을 진행 중이다”며 “연말쯤 실적 부진과 관련해 책임경영 차원의 임원 인사는 있을 수 있겠지만, 구조조정 성격의 인력 감축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