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 민영화의 일환으로 매각이 추진되는 증권업계 2위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이 뜨겁다. KB금융지주와 농협금융지주가 각축을 벌이고, 대신증권·미래에셋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이 참여했다. 파인스트리트 등 투자자문사와 사모펀드들도 중국 등 해외 투자자들을 규합해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나섰다.

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오는 21일 예비입찰 마감까지 10곳 이상이 입찰의향서를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우리투자증권이 인기있을 것이라는 예상대로 인수전이 치열하다. '열국지(列國志)'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재무 관료 출신으로 취임 첫해라는 공통점이 있는 KB금융지주 임영록(행시 20회) 회장과 농협금융지주 임종룡(24회) 회장의 승부를 주목하고 있다. 금융권 첫 여성 CEO인 이어룡 회장의 대신증권도 업계 선두권을 탈환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여 만만찮은 경쟁자로 꼽힌다. 뒤늦게 인수전에 뛰어든 박현주 회장의 미래에셋증권, 삼정KPMG 창업자인 윤영각 회장이 이끄는 파인스트리트의 전략도 관심을 끈다.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임종룡 농협금융 회장의 전면전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연일 포문을 열고 있다. 지난달 30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투자증권 인수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농협이야말로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증권업 경영에 적당한 그릇"이라고 했다. KB금융지주에 비해 자금력에서 뒤진다는 지적에 대해 "1000원짜리를 사는데 4000원 가진 사람과 5000원 가진 사람이 무슨 차이냐"고 반격했다. 임 회장은 최근 사석에서 "나는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서) 끝까지 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 이어룡 대신증권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은 신중한 성격대로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임 회장의 인수 의지는 강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지주는 국민은행의 비중이 너무 커서 비(非)은행 부문의 강화(우리투자증권 인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임 회장이 후배인 임종룡 회장에게 등을 보일 생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다. KB금융의 약점은 외국인 주주나 이사회에서 인수 가격을 어느 선 이상은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대신증권을 '다크호스'로 꼽는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신증권도 옛날 같지 않으니 도약의 계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게다가 오너(이어룡 회장)가 직접 나서면 세게 베팅(입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에 대해서는 "완주할 생각이라면 강력한 경쟁자지만, 예비입찰에 참가해 우리투자증권 내부 사정을 좀 들여다보겠다는 수준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증권업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우리투자증권 매각가 예상보다 최대 2000억원 상승 가능성

인수전이 치열해지면서 우리투자증권 매각 가격이 상승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초에는 1조~1조2000억원 정도가 거론됐지만, 2000억원 정도 더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농협금융지주 핵심 관계자는 "이번 인수전은 간단하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쪽이 승리하는 것이고, 농협금융은 그럴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농협금융지주는 우리투자증권에 우리자산운용·우리아비바생명·우리금융저축은행 등 다른 3개사를 합쳐 1조8000억원대의 인수 가격 제시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입찰은 우리투자증권과 다른 우리금융 계열 3개사 등 4개사에 대해 각각 입찰 가격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KB금융은 우리투자증권 이외에 나머지 3개사는 관심이 없다. KB금융 관계자는 "별 영양가가 없으니 '끼워팔기'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KB금융은 우리투자증권 가격을 최대한 높여서 입찰하고, 나머지 3개사 입찰 가격은 최저가를 제시하는 전략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우리투자증권 인수 가격을 가장 높게 써낸 곳이 나머지 3개사 인수를 원하지 않는 경우 패키지 매각을 풀어버리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증권·동양증권 등 후속 매물이 인수전의 변수 될 수도

우리투자증권 인수전 열기가 뜨겁지만, 입찰 마감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투자증권 인수에서 패배한다고 해도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의 통합이 예정대로 내년 7월 성사될 경우 내년 하반기쯤 산업은행이 대우증권을 매물로 내놓을 예정인 데다, 동양그룹 법정관리 사태로 동양증권도 매물로 나오게 돼 일종의 '패자부활전'이 가능하다. 대우증권은 업계 1위이고, 동양증권도 동양그룹 사태로 자금 이탈 현상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던 증권사다. 그러나 대우증권 매각 일정이 다소 불확실하고, 동양증권은 이미지가 크게 추락한 상태라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