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이번에 하향조정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3.7%)는 정부가 최근 예산안을 짜면서 전제한 3.9%보다 0.2%포인트 낮다. 최근 민간 연구소들도 세계 경제의 미약한 회복세, 신흥국 불안 등을 감안해 성장률을 3% 중반대로 내려 잡는 분위기다. 이번 주 한국은행도 성장률을 4%에서 3% 후반대로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성장률 하향조정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등으로 신흥국 경제가 불안한 상황에서 선진국의 경제 성장세도 기대에 못 미친 데 따른 결과다. 세계 경제의 회복세가 예상보다 미미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도 악영향을 받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 내년 성장률 줄줄이 하향…정부 '장밋빛' 예산안 어쩌나

IMF에 앞서 지난 2일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7%에서 3.5%로 하향조정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3.6%를, 국회예산정책처는 3.5%를 제시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3.8%로 비교적 높은 수준이지만 3%대 중반 수준의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은행도 오는 10일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현행 4%대에서 낮출 것이란 관측이 높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가 내년 3.9%의 성장률을 전제하고 짠 예산안에 대한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2014년 예산안에서 이러한 성장률을 전망하고 세입예산을 올해보다 8조1000억원 늘어난 218조5000억원으로 잡았다. 민간은 물론 국제기구나 국책연구기관보다 성장률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전망, 세수를 과도하게 잡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올해 예산안도 당초에 성장률 4%를 전제로 짰다가 지난 3월 올해 성장률을 2.7% 정도로 하향조정하면서 세입 규모를 12조원이나 줄이는 감액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했다. 앞서 지난해 경제 전망 역시 너무 낙관적으로 본 탓에 국세 수입이 당초 전망보다 3조원 가까이 부족했었다. 2012년 예산안을 편성할 때 성장률을 4.5%로 예상했지만, 경기가 하반기 갈수록 악화되며 연간 성장률이 전망을 훨씬 밑도는 2%로 떨어진 데 따른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낙관적인 경제 전망은 세입 과대 추계로 이어져 재정적자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며 "세입 전망의 기초가 되는 거시 경제 전망의 현실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성장률이 1% 떨어지면 약 2조원의 세수가 덜 걷히는데, 지금까지 하향조정된 성장률과 정부 전망치 간 오차는 연간 불용액인 5조~6조원 내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 세계 경제 회복세 기대 못미쳐...수출 불안↑

성장률 전망치가 잇따라 하향조정되는 것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의 회복세가 당초 기대에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전망이 불거진 이후 신흥국은 금융 시장 불안 등으로 내년 성장률 전망치가 하향조정됐다. 그러나 경기가 개선돼 성장률 전망치가 상향조정될 것이란 기대를 높였던 미국에 대해 IMF는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3.6%로 0.2%포인트 낮췄고, 중국은 7.3%로 0.4%포인트 내려잡았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로서는 미국, 중국 등 주요 수출국의 성장 전망이 예상보다 낮아지며 수출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의 내수가 가계부채 문제로 취약한 상황에서 수출이 경제를 이끌어야 하는데 세계 경제가 예상보다 나빠지면 수출 성장세가 둔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의 경제성장세가 7% 초반으로 둔화한 것은 수출 전망의 하방 위험을 높인다고 덧붙였다. 신민영 LG경제연구소 경제연구부문장은 "대외 환경이 연초에 비해 악화됐다"며 "미국의 경우 최근 재정 문제가 크게 불거진데다, 소비심리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고르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등 수출 환경이 당초 전망보다 덜 우호적"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신민영 부문장은 "우리 경제가 최소 3.6%의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다면 연간 9~10%의 수출 증가율을 이어갈 수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해외 투자은행(IB)들은 수출이 아직 충분한 회복세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지만 고부가가치 산업을 중심으로 호전될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노무라는 "한국 수출은 고소득층에게 더욱 민감한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커져 대(對) 선진국 수출 호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