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철강산업이 트릴레마(Trilemma·3중고)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민동준 연세대 교수는 26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한국철강협회 주최로 열린 철강산업 발전포럼에서 “10년 내에 한·중·일 3국 철강 산업의 영역 구분이 거의 없어질 것”이라면서 “새로운 경쟁 질서를 구축하는 등의 혁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먼저 2011년부터 철강 산업은 3차 불황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일쇼크로 1973년부터 25년간 겪은 2차 불황기에 이어 잠시 중국발 호황이 있었지만, 이것이 끝났다는 것. 그 증거로 1998~2010년 전세계 철강 업체들은 연평균 6.3%씩 성장했지만 2011년부터는 성장세가 1%대로 하락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또 철강회사들의 영업이익률이 하락하고 적자를 보는 회사도 생기면서 감산 등 자구책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했다. 북미 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2004년 12.5%에서 2011년 4.1%로 떨어졌다. 유럽과 동아시아도 마찬가지다. 유럽 업체들은 11.1%에서 3.5%로, 동아시아는 17.2%에서 3.8%로 각각 떨어졌다.

이에 철강회사들은 최근 가혹한 구조조정을 시행 중이다. 아르셀로미탈은 비 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스테인리스 부문을 분사했다. 티센크루프도 미주 사업 매각을 추진하고 역시 스테인리스 부문을 분사했다. 일본 업체들은 합병을 가속화하고 있다.

철강 업체들이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상 최대의 설비 과잉이 지속하며 공급 과잉 상태인데 중국의 성장세 둔화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요가 꺾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료 가격은 하방경직성이 있어 잘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오르는데, 이를 조선과 자동차 등 수요 산업에 전가하지 못한다는 점이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 경기가 좋으면 철강 값을 올릴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 원가가 올라도 값을 올리지 못한다. 민 교수는 또 한국을 타깃으로 하는 반덤핑 관세 부과 등 보호무역조치가 늘고 환경 규제가 강화된다는 점도 철강 업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할 때 국내 철강 업체들은 3중고를 겪고 있다는 게 민 교수의 분석이다. ▲저성장·공급과잉의 한계 ▲철강 산업의 구조적 한계 ▲원료와 제품의 기술적 한계가 그 것. 민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경쟁 질서를 구축하고 ▲상생 협력형 산업 생태계를 부활하며 ▲혁신적인 연구개발(R&D)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 교수는 "철강사들이 수요산업인 조선 산업의 부품업체에 필요한 제품을 공급하고 기술 개발을 돕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또 기술 개발을 통해 원가 비중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날 포럼에는 중국과 일본의 철강업계 관계자들도 참석해 철강 산업 발전 방안을 제시했다. 츠 징동 중국철강공업협회 부비서장은 "전세계 공급 과잉은 중국에서 시작됐다"면서 "공급을 줄이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기술력이 떨어지는 회사를 도태시키고, 환경 규제로도 공급을 줄이는 것을 시도할 것"이라면서도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일본철강연맹 유조 이치카와 전무는 먼저 “아베노믹스 영향으로 일본 경기가 좋아지면서 철강의 수요 산업 환경도 좋아지고 있다”면서 “동일본 대지진 복구 사업 등으로 내수 수요가 회복되는 측면도 있지만 일본 제조업의 생산기지가 해외로 나가기 때문에 수요가 줄어드는 요인도 있는 등 부문별로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동아시아 지역 공급 과잉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특히 한국과 중국의 설비 증설을 이유로 꼽았다. 이치카와 전무는 “일본은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가동 용광로 수가 가장 많았을 때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면서 “동아시아 철강회사들이 건전한 경쟁을 하고 서로의 시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존중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지구온난화 대응과 구조조정 경험 등은 공유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