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사용됐던 업무관리시스템 이지원 개념도

참여정부 시절 구축된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 ‘이지원(e-知園)’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2008년 MB정부 출범과 함께 긴 잠을 자던 이지원이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사건을 계기로 다시 수면 위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지원은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IT전문가 사이에서는 공공 분야 전자문서시스템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업무관리시스템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자문서관리시스템(EDMS)에서 진화한 비즈니스프로세스관리시스템(BPMS)을 청와대 차원에서 도입,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업무혁신을 이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이전만 하더라도 청와대에서는 대면(對面) 보고가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이지원을 통해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 중심에 섰고, 온라인 업무보고가 보편화됐다. 지시와 회의도 모두 디지털화됐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고안해 탄생한 ‘이지원’. 2006년 특허등록까지 받은 이지원은 과연 무엇인지, 또 어떤 시스템인지 살펴본다.

◇누가 어떻게 만들게 됐나

이지원은 '청와대 디지털 지식정원'이라는 뜻으로 영어로 하면 'easy one(사용하기 쉽고 편리하게 하나로 통합된 업무관리시스템'을 의미한다. 행정의 투명성·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한 문서관리시스템과 공적행위의 철저한 기록화를 위한 기록관리시스템을 축으로 삼고 있다.

1990년대 말 국내 기업들은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도입, 경영자원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선진 업무프로세스를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행정기관에서도 2000년대 초부터 전자결재시스템을 도입, 정보를 공유하고 오프라인 결재를 전자적으로 처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자결재시스템이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았고, 여러 기관이 똑같은 문서를 수차례 중복 작성해 제출하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보고방식도 여전히 대면(對面) 보고 중심으로 이뤄져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업무관리를 표준화, 통합화, 시스템화 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그 출발로 2003년 3월 게시판 위주로 주요 정보를 공유하는 그룹웨어를 시작, 청와대 업무흐름 전반을 디지털화하기 위한 정보화전략계획을 수립했다. 2003년 말에는 이지원시스템을 개통, 운영하면서 사용자들의 참여로 발전시켰다.

이지원의 개발 초기에는 전기정 전 비서관(현 상명대 교수)이, 후반부 작업에는 강태영 전 비서관(현 포스코경영연구소장)이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지원은 삼성SDS가 자사가 개발한 에이큐브(ACUBE)라는 솔루션을 기반으로 청와대 요구에 맞는 설계·기능을 추가적으로 제공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에이큐브는 이지원 외에도 옛 행정안전부 온나라 시스템과 육군본부 온나라시스템 구축에 사용됐다. 에이큐브는 국제 표준 기반의 통합 업무 솔루션으로 체계적인 문서분류 관리, 업무 추진현황 파악·분석 등을 지원한다.

◇무엇을 바꿨고, 어떤 기능이 있었나

청와대는 2004년 말 문서의 생산·유통·축적·재활용이 가능하도록 문서관리카드라는 새로운 문서 양식을 개발했다.

기존 그룹웨어가 메일·게시판, 전자결재 위주의 서비스였다면 이지원시스템은 업무처리과정을 일지형태로 기록하게 하는 과제관리카드를 개발해 정책결정의 투명성을 꾀했다. 각종 회의를 지원하는 디지털회의시스템을 구축, 회의 안건부터 진행까지 모든 과정을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 지시사항 관리도 온라인화했다.

2008년에 발간된 참여정부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이지원이 도입된 후 대통령비서실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정책을 처리한 모든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 몇번의 검색으로 관리 보고서를 찾을 수 있었다. 정책실명제가 구현됐고 업무정보와 지식정보 공유도 활발히 이뤄졌다. 이전까지 몇주씩 걸리던 보고가 평균 하루, 늦어도 이틀 안에 처리됐다.

디지털회의가 활성화되면서 회의안건 자료를 인쇄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회의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실시간 회의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지원의 세부 기능을 살펴보면 출력시에는 인증된 프린터에서만 가능했으며, 자르기·복사하기 기능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개발자가 자신의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슈퍼어드민 같은 기능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슈퍼어드민 기능을 가진 대통령은 결재나 문서 삭제 같은 것도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이지원은 사용 주체가 청와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폐쇄적인 시스템으로 구축됐다. 외부에서는 일체 기능이나 용도를 알기가 쉽지 않았으며, 문서검색도 쉽게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지원뿐 아니라 청와대 비서실 기록관리시스템(RMS), 대통령기록물관리시스템(PAMS) 역시 파일검색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장은 “시스템의 주기는 5년이지만 50년 이상 문서가 보존되기 위해서는 PDF A로 변환한다”며 “PDF가 오픈소스인데다 오래 갈 시스템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장기보존을 할 때 데이터베이스(DB)와 본문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서 관리하도록 하는데, 파일본체는 PDF A 형식으로 변환하고, 메타데이터 부분은 PDF로 변환한 파일로 같이 코딩작업을 한다는 것.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문서를 찾을 수 있는 장기보존전략을 위해 불가피 하게 검색이 어려운 구조를 택했다는 것이다.

◇특허등록까지 받아…노 전 대통령 이지원 애착 남달라

2006년 2월 고 노 전 대통령과 청와대 소속 4명의 비서관은 공동으로 이지원의 특허등록에 성공, 화제를 모았다.

당시 등록된 ‘통합 업무 관리 시스템 및 이의 운영 방법’이라는 특허에도 이지원의 목적과 시스템 구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지원 특허는 업무관리 시스템, 과제 관리, 문서 관리가 핵심으로 구성돼 있다. 통합 업무관리 시스템은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돼 조직 업무를 전자적 형태로 관리한다. 보고의 수단으로 보고 경로 이력을 포함한 문서관리 카드를 사용하고 지시 수단으로는 지시 경로 이력을 포함한 지시 카드가 사용된다. 업무 수행자는 보고, 지시, 인수인계를 수행할 수 있도록 과제 관리 카드로 진행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지원에 저장된 문서 본문에는 보고서의 내용이 변경된 이력 정보가 나오며, 업무 수행자는 이를 파악해 업무에 적용했다.

참여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정보전략담당관을 지냈던 김경섭 한국정보화진흥원 부원장은 “이지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개발·설계 단계에 참여, 애착이 많았던 시스템으로 안다”며 “본인이 사용편의성을 위해 직접 개발과정에서 조언을 많이 한 만큼, 아침에 눈 뜰 때부터 업무가 끝날 때까지 이지원과 함께 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고 했다.

이지원 구축 사업자였던 삼성SDS는 당시 프로젝트 매니저였던 임모 상무 등이 시스템 구축을 위해 청와대와 설계·기능 등을 조율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제표준 기준에 맞춰 개발…삭제 기능도 있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기록물은 이지원, 청와대 비서실 기록관리시스템(RMS), 이동형 하드디스크, 대통령기록물관리시스템(PAMS) 4단계를 거쳐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됐다.

원래 이지원에는 삭제 기능이 없었지만, 개발 후에 추가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지원에 참여정부 말기 초기화 기능이 추가됐을 뿐 애초부터 삭제 기능은 없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청와대, 나아가 대통령이 쓰는 시스템에서 삭제 기능이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반박한다.

이지원은 개발 과정에서 ISO 15489(기록관리), ISO 23081(기록관리 메타데이터) 등 국제표준이 제시하는 기준에 맞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청와대가 요구하는 특수 기능을 추가했기에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기보다는 데이터를 삭제했거나 검색이 어려워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전문위원인 남영준 중앙대 교수(문헌정보학)는 “본문이 암호화되서 검색이 안될 수 있다”며 “키워드로 검색했는지, 서명 또는 원문을 검색했는지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라 뭐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 취재과정에서 이지원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했던 인물들로부터 이지원의 실체에 대해 속시원한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에서 일했던 조미나 전 행정관(현 세계경영연구원 상무)과 민기영 전 비서관(현 포스코경영연구소 상무)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이지원을 기반으로 온나라시스템(참여정부 시절 만들어진 정부 업무처리 전산화 시스템) 개발을 주도했던 김남석 전 행정안전부 차관(현 우즈베키스탄 정보통신기술위원회 부위원장)도 국제통화에서 “이지원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