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선진국들은 복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증세(增稅)를 포함해 국민의 고통 분담을 이끌어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대변되는 영국은 1900년대 초 지속적으로 세금을 올려 복지 국가의 기틀을 닦았다. 맥주, 담배, 자동차, 석유 등 생활에 밀접한 연관이 있는 상품에 대해 세금을 늘렸고, 누진세로 소득세 부과 기준을 바꿨다. 토지에 대한 자본이득세도 도입했다. 당시 로이드 조지 수상은 이런 증세안을 '전쟁 예산(war budget)'이라고 불렀다. 빈곤을 줄이기 위한 '전쟁'을 위해 재정을 조달해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해 동의를 얻은 것이다.

복지 혜택이 많은 선진국들은 예외없이 국민이 세금을 많이 부담하고 있다. 특히 북유럽 국가들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민 부담률(세금 부담+사회보험료)이 40~50%에 달한다. 올해 우리나라의 국민 부담률은 27%에 그친다. 외국에서는 기업들도 우리나라보다는 세금을 많이 낸다. 미국과 독일의 법인세율은 각각 35%, 30% 수준으로 우리나라(22%)보다 높다.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정부가 증세만 고집할 게 아니라 다른 아이디어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웨덴은 전체 조세부담률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개인이 내는 사회보험료의 31%를 고용주인 기업이 부담하게 해서 조세 저항을 줄인다.

유럽 국가들이 물건값에 붙는 부가가치세율을 높이는 것도 거부감을 줄여 복지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OECD 국가의 평균 부가가치세율은 19%이며, 북유럽 3개국은 25%에 달한다. 올 초 방한한 앙헬 구리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사무총장은 "한국이 부가가치세율 인상 여력이 있다"며 복지 재원을 확충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선진국들은 경제가 어려워지고 재정 적자가 심해지면 복지 혜택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영국은 최근 세제 혜택을 축소하는 것뿐 아니라 공공지출을 삭감하고 사회보장제도에 누수가 생기지 않도록 고삐를 죄고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정부가 재정 지출을 줄여 복지 재원으로 조달하는 것을 먼저 보여줘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