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을 뒤집어도 이렇게 쉽게 뒤집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난 정부에선 절대 안 된다고 했던 것이, 정권이 바뀌니까 갑자기 된다고 합니다.

국토교통부 이야기입니다. 지난 17일, 이미 끝난 것으로 알려진 동남권 신공항 수요조사가 다시 착수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객관적인 수요조사에 착수하기 위해 영남지역 5개 지자체 간 합의서를 체결했다는 국토부 보도자료에는 갑자기 말을 바꾸기가 무안했던지, '동남권'이라는 표현은 빠지고 신공항이라고만 표현했습니다. '신공항, 협력과 신뢰의 프로세스 마련'이란 의미불상의 추상적인 보도자료 제목만 봐서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위한 수요조사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인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조선일보 DB

상세히 전달돼야 할 보도자료에서부터 왜 이런 말조차 생소한 애매한 표현들을 쓰는 일이 벌어졌을까요?

지난해 10월 권도엽 전 국토부(당시 국토해양부) 장관이 동남권신공항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죠. 권 전 장관은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김해공항 활주로 1곳을 추가하면 2030년까지 수요를 충당하는 데 부족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신공항 논의는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국내 15개 공항 가운데 11개가 적자에 시달리는 상황입니다. 국제선 항공 여객이 늘고 저비용항공사(LCC) 등 항공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게 국토부 주장이지만 1년도 넘지 않는 사이에 상황이 바뀌었을 리 만무합니다.

국토부가 4·1 부동산 정책으로 내놓은 수직증축도 마찬가지입니다. 2011년 7월 국토부는 '공동주택 리모델링 정책 방향'이라는 보고서에서 수직증축에 대해 "정밀시공에 한계가 있어 품질확보와 안전성을 확실히 담보할 수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새 정부 들어서자마자 180도 달라졌습니다. 담당 국토부 관계자는 "안정성 문제로 수직증축을 허용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낡은 주택이 늘어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선이 필요한 사항이라고 판단했다"며 다소 석연찮은 이유를 들었습니다. 갑자기 안전문제가 뒤로 밀려난 것이죠.

올해 3월 4대강 중 하나인 세종시 세종보에서 수문 보수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국토부의 손바닥 뒤집기의 백미는 '물값 인상'입니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은 19일 세종시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친수구역 사업 등으로는 수자원공사의 4대강 사업 부채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다"며 "4대강 사업 부채를 줄이기 위해 물값 인상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옛 국토해양부와 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을 강행하면서 사업비를 친수구역 개발을 통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시민단체 등이 물값 인상 우려 등을 제기하자 "4대강과 물값 인상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승환 장관이 이를 뒤집고 국민 세금으로 4대강 사업 빚을 갚는데 물값 인상을 거론하자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고, 이에 국토부는 "원론적인 발언이다"라며 서둘러 해명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진 것입니다.

올 초 취임한 서 장관은 "주요 정책을 (취임) 첫 100일 안에 마무리 짓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고 강조했습니다. 덕분에 국토부는 지난 100일간 4·1 부동산 정책, 행복주택, 신공항, 댐 절차 개선 등 쉴새 없이 정책을 쏟아 내놓고 있습니다. 창조경제란 코드를 맞추기 위해 지난 정권의 핵심 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과도 선을 긋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는 청와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박근혜 대통령은 '신뢰와 원칙'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혀왔고, 또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국토부의 이 같은 '손바닥 뒤집기'식 정책과 발언들이 대통령이 중시하는 신뢰와 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 되짚어볼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