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국내 가구업계에 악재(惡材)가 이어지고 있다. 한때 업계 1위였던 보루네오 가구는 자금난을 겪다 지난 10일부터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국내 가구업계 2위인 리바트 경규한 대표는 지난달 31일 임기 만료 9개월을 앞두고 사임했다. 업계에선 매년 리바트 영업이익률이 0.5% 선에서 머물자, 최대 주주인 현대그린푸드가 대표를 교체했다는 말이 나왔다. 국내 사무용 가구 시장 1위인 퍼시스도 올해 1분기 매출이 599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8% 줄었다.

가구업계 불황은 몇몇 업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가구산업협회가 집계한 국내 가구 시장 규모는 2008년 9조9400억원에서 지난해 8조5000억원으로 줄었다. 업체 수도 2007년 1441개에서 2011년 1254개로, 종업원 수도 2007년 3만5878명에서 2011년 3만4683명으로 줄었다. 한국가구산업협회 이용원 사무국장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가구업계가 양적 성장 한계에 부딪혀 규모가 많이 줄었는데, 최근이 그때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다.

최원래 가구산업은 소득이 높아질수록 성장하는 업종이다. 1인당 GNP(국민총생산)가 2만달러 이상이면 사람들이 주택이나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게 돼 가구 산업이 성장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의 1인당 GNP는 2000년대 후반부터는 2만달러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국내 가구 업계는 되레 그때부터 더 위축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반대로 간 것이다.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 분석을 종합하면 그럴 만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①건설·부동산 경기 침체가 직격탄

가장 큰 이유로는 건설·부동산 경기 침체가 꼽힌다. 가구제조사 크라텍의 김기형 사장은 "국내 소비자들은 보통 이사를 하면서 가구를 많이 바꾸는데,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가구 업계가 동반 침체에 빠졌다"며 "체감상으로는 2008년 전후로 이사 비율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건설 경기 침체는 특판(건설사에 붙박이 가구를 판매하는 것)을 주로 하는 가구업체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한 중견 가구업체 관계자는 "최근 어려움을 겪는 보루네오, 리바트 등은 특판 비중이 높은 업체"라며 "유일하게 성장세가 지속되는 한샘은 특판 비율을 절반으로 줄이고, 수출 비중을 높이면서 수익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경기 침체도 영향을 미쳤다. 사무용 가구는 신설 법인 설립에 영향을 받고, 혼수 의존도가 높은 가정용 가구는 결혼적령층 규모에 영향을 받는다. 김기형 크라텍 사장은 "불황으로 문닫는 회사가 늘고, 결혼을 미루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면서 가구 시장이 더 침체에 빠졌다"고 말했다.

②똑같은 디자인으로 경쟁력 약화

국내 가구업계의 디자인 경쟁력 약화가 업계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국내 가구업계엔 '이탈리아 앤티크 스타일은 A업체', '미국 클래식 스타일은 B업체' 등으로 업체별로 구분되는 디자인 특색이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단순함을 강조한 디자인이 유행하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그 디자인을 베끼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이 때문에 당시 국내 가구 산업이 '노동집약형 산업'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경쟁력을 잃었다고 말한다. 가구는 디자인만 좋아도 비싸게 팔 수 있는데, 업체들이 디자인에 대한 투자를 줄이면서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1980년대 가구 시장을 주도했던 창업자들이 물러나고 2세로 넘어간 뒤 가구업체들이 현실에 안주했다는 지적도 있다.

③값싼 외국산 가구의 공세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싼 값의 가구가 들어온 것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한국가구산업협회 이용원 사무국장은 "2004년부터 외국산 가구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하면서 국내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에서 밀렸다"며 "그러다 보니 원·부자재가격이 30% 이상 뛰고 인건비가 올라도 국내 가구업체들은 가격을 올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국내 가구업체는 디자인을 강화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다품종 소량생산'하는 방식으로 바꿔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