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땐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죠? 우린 마누라 빼고 다 팔아치울 판입니다."

건설업계가 살아남기 위해 자산 매각에 올인(all in)하고 있다. GS건설의 서울 남대문 사옥(1700억원), 삼부토건의 르네상스서울 호텔(1조1000억원), 두산건설의 서울 논현동 사옥(1440억원) 등 최근 진행된 굵직한 매각 건만 꼽아도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다. 경매 시장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건설사들이 팔려고 내놓은 자산이 겹겹이 쌓여 있다. 동아건설산업 천안공장(감정가 619억원), 성원건설 용인사무소(104억원), 우림건설 사옥(390억원)….

건설회사들이 살아남으려고 이처럼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아직 상황이 호전되는 기미는 찾을 수 없다. 상위 100대 건설사 중 이미 23개사가 구조조정 중이고, 비슷한 수의 회사가 더 구조조정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건설업계의 호소가 엄살이 아닌 상황이다. 건설업은 우리나라 GDP의 16%를 차지하고, 관련 일자리가 200만개가 넘는다. 건설업의 위기는 곧 한국 경제의 위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이다.

◇수주 8개월째 두 자릿수 마이너스

건설업체 한 임원은 "최근 건설 경기는 부진이란 단어로는 설명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했다. 3월 건설 수주액은 6조5271억원으로 1년 전보다 21.8% 감소했다. 지난해 8월 이후 8개월째 두 자릿수의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며, 지난 1월에는 무려 44.7%나 감소한 바 있다. 건축물 신규 착공은 3월 12.9% 감소하면서 지난해 8월부터 8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지난해 구조조정(워크아웃 및 법정관리) 절차를 신청한 건설사가 8개에 이르고, 올 들어서도 3개사가 추가됐다. 이에 따라 시공능력 평가액 기준 상위 100대 건설사 중 금호, 벽산, 풍림 등 23개사가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업황이 워낙 안 좋다 보니 채권 은행들이 기업의 회생을 돕는 워크아웃조차도 잘 수용하려 들지 않는다. 쌍용건설의 경우 워크아웃을 신청했지만 채권 은행들이 추가 자금 지원을 꺼리면서 워크아웃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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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진짜 폭탄은 구조조정 기업들이 아니라 '대형 건설사들'이라고 말한다. 올 들어 대형 건설사들의 경영 실적이 '어닝쇼크'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10대 대형 건설사는 1분기에 총 3884억원의 손실을 냈다. 1분기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줄었거나 적자로 전환한 곳이 10곳 중 6곳에 이른다.

주요인은 해외 사업 부진 때문이다. 그간 대형 건설사들은 국내 건설경기 부진을 해외에서 만회해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업체들의 해외 수주 금액은 300조원이 넘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해외 수주 대부분이 저가의 출혈경쟁에 의한 것이었다. 올해 1분기 대규모 손실을 본 GS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은 각각 4조원 규모의 UAE 정유공장 공사에서의 4000억원대 손실과 미국 다우케미컬 염소생산시설 공사의 손실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삼성엔지니어링은 해외 수주액을 2008년 13억달러에서 지난해 105억달러로 크게 늘렸다"며 "이처럼 늘어난 수주액 가운데 상당액이 저가 수주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15곳 추가 구조조정 예상

공사 저가 수주와 그에 따른 수익 감소는 국내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건설공사 이윤율은 2007년 6.4%에서 계속 떨어져 지난해엔 0.5%에 불과했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업체 중 이자보상배율 1 미만(벌어서 대출 이자도 못 갚는)인 곳이 전체의 65.7%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 수술대에 오르는 건설사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예금보험공사는 최근 100대 건설사에 대해 경영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15개사가 추가 구조조정돼야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부채비율, 순익 현황 등을 기준으로 경영 상태를 수치화했는데, 100점 만점에 50점 미만을 받은 곳들이다. 이 예상이 현실화하면 기존에 구조조정 중인 23개와 합쳐 상위 100대사 중 총 38곳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셈이다.

건설 기업들의 부실은 자칫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3월 말 기준 예금 취급 기관들의 건설·부동산업에 대한 대출은 총 149조4661억원에 달한다. 전체 기업 대출의 18.6%를 차지한다. 이처럼 많은 대출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이미 부실화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건설·부동산 대출 중 3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대출의 비중은 3.9%로 전체 기업 대출 연체율(1.8%)의 2배를 넘는다. 국제 신용 평가사 무디스는 "건설·부동산업의 어려운 상황이 한국 은행들의 자산건전성 악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업황 전망으로 볼 때 건설업의 부진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인구 감소 요인에다 정부가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신규 건설 투자를 최대한 억제할 계획이어서 정부 발주 공사 물량도 줄어들 전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