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건설·조선 3대 업종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뇌관(雷管)'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들은 2000년대 중반 세계적 호황을 타고 한때 우리 경제의 기둥 역할을 했던 효자 산업들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몰아닥친 글로벌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3대 업종 모두 부실의 늪에 빠진 가운데, 상당수 기업이 영업활동을 해도 은행 빚조차 못 갚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이들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이 실패할 경우 80조원에 이르는 금융권 대출이 부실해지면서 '해운·건설·조선발(發)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해운·조선·건설 3대 업종의 현황과 문제의 원인을 파헤쳐 해결의 실마리를 모색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45년 역사를 가진 대한해운의 사세(社勢)가 기운 것은 순식간이었다. 5년 전만 해도 연 매출 3조5000억원을 올리며 호황을 구가하던 기업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철퇴를 맞고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글로벌 불황으로 운송 수요가 급감한 데다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운임이 10분의 1토막이 났다. 2011년 매출이 호황기의 5분의 1수준인 7600억원 수준으로 추락했고, 결국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대한해운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경영 환경은 다른 해운사들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요즘 국내 해운사들은 누적된 적자로 현금이 마르면서 배·크레인·사옥 등 돈이 되는 것은 다 내다 파는 중이다. 1위 업체인 한진해운은 지난해 선박과 컨테이너를 각각 250억원, 1400억원에 팔았고, 지난 2월엔 부산항에 있는 크레인 장비와 컨테이너선을 매각했다. 2위 업체인 현대상선도 지난해 크레인과 배를 팔아 1500억원을 마련했고, 올해 1월에는 유조선을 팔았다. 3위 업체인 STX팬오션도 LNG(천연가스)선 매각을 검토 중이다.

우리나라의 해운업은 수출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한국 경제의 '기적'을 대표하는 업종이다. 수출 확대와 함께 성장, 연 매출이 40조원에 이르렀고, 매출의 90%를 외국에서 벌어오고 있다. 직접 고용만 5만여명에 이르는 '효자 산업'이다. 하지만 3년째 최악의 불황이 계속되면서 해운사 180여개 중 12개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80개 이상이 폐업했다. 업계 3·4위 기업은 매물로 나왔고, 1·2위 업체는 생존을 위해 배와 컨테이너까지 팔아 치워야 할 만큼 암울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해운업체 절반이 부도 위기"

본지가 27일 한진해운·현대상선·STX팬오션·SK해운 등 국내 4대 해운사 실적(연결재무제표 기준)을 분석한 결과, 4개사는 지난해 2조2000억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2600억원의 적자를 내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STX팬오션은 2010년 이후 영업이익을 전혀 못 내고 있다. 업계 4위였던 대한해운은 2011년 1조1700억원의 적자를 내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STX팬오션은 매각이 논의되고 있다.

중·하위권 업체들을 포함한 업계 전체 상황은 더 암울하다. 지난해 해운업계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8%로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해운업체의 자기자본비율은 2010년 32%에서 2012년 말 16%로 반 토막이 나면서 자본잠식이 우려되는 수준이 됐고, 부도 확률은 자동차(3.2%), 전자(2.9%)의 2.5배인 8.5%까지 치솟았다.

수익을 못 내고 빚으로 연명하다 보니 부채비율은 매년 급증하고 있다. 2009년 277%에 불과했던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올해 1분기 말에 856%로 치솟았다. 한진해운과 STX의 부채비율도 각각 775%와 311%에 달한다. 이들 3개사가 2013년에 갚게 되어 있는 회사채 만기액은 2조원에 육박한다. 해운업체 4개 중 3개는 유동비율(단기 채무 상환 능력)이 100% 미만으로, 당장 채무 상환 압박이 들어오면 돈을 모두 갚지 못할 상황이다. A국책은행 부행장은 "해운업체 2개 중 1개는 부도 위기에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금융권은 인수·합병을 통한 추가적 업계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워낙 업황이 나쁘다 보니 이것조차 쉽지 않다. STX팬오션의 경우 산업은행의 인수가 난항을 겪고 있고, 대한해운도 채권단 주도로 7월부터 3차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을 할 계획이지만 시장에서는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해운업발(發) 금융위기 우려

해운업의 위기는 금융을 매개로 한국 경제 전반의 위기로 전이될 위험이 있다. 현재 국내 은행권(국책은행 포함)의 해운업에 대한 대출액은 2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6개 시중은행이 약 3조원(협력업체 포함), 수출입은행이 8조6000억원에 달한다. 산업은행도 수출입은행 못지않은 규모의 여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외국계은행 리스크담당부행장은 "(해운업 위기는) 은행 대출이 부실해지는 것보다 '공포의 도미노'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상위 대형업체들의 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 중 하나만 무너져도 조선·건설 등 다른 업종으로 공포가 확산하면서 기업들의 유동성 위기가 급증하고,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해운업계는 "경기가 회복되면 해운업 위기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면서 "그때까지 버틸 시간을 벌어달라"고 정부와 금융권에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해운업을 불황으로 몰아넣은 중국발(發) 선복(船腹·화물 운송량) 공급 과잉과 이에 따른 운임 하락이 여전해 정부도 금융권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물동량 증가율은 7%대에 달했지만, 선복량 증가율은 10%를 뛰어넘어 공급 과잉 문제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화물 운임은 현재 최고 호황기인 2008년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고유가로 인해 전체 비용의 20%를 차지하는 연료비마저 1t당 600달러 선으로 3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치솟아 해운사들을 짓누르고 있다. 운임은 바닥인데 배값, 배 빌린 값, 연료값 대느라 계속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하이투자증권 김익상 애널리스트는 "3~4년을 주기로 하는 해운업 사이클을 고려하면 일러야 내년 하반기부터 업황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