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신은 혼자인데 여러 명과 싸워야 할 때는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그런 경우라면 자신은 딱 한 놈만 골라서 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 이 말을 한 주인공은 나중에 혼자서 여러 명과 싸우면서 딱 한 놈만 골라서 패는 장면이 나온다.

학문적으로 전략을 분석하는 게임 이론을 통해 보더라도 이런 ‘한 놈만 골라서 패’ 작전은 매우 유용하다. 상국이라는 한 사람이 열 사람과 맞붙어 싸우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당연히 상국이는 혼자서 열 사람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설사 자신이 지더라도 열 사람 중에서 딱 한 사람만은 죽도록 때려서 큰 피해를 주는 것은 가능하다.

만일 상국이가 이런 ‘한 놈만 골라서 패’ 작전을 자주 사용한다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상국이와 싸우는 열 사람은 이길 것이 분명하지만 잘못 덤벼들었다가는 자기만 상국이에게 엄청나게 얻어맞을 것이기 때문에 선뜻 싸움을 걸기 어려워진다. 즉, ‘한 놈만 골라서 패’ 작전을 잘 사용하면 상국이는 열 사람과 맞서 싸워도 지지 않을 수 있다. 상국이의 전략을 두려워 한 열 사람이 잘 덤비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놈만 골라서 패’ 작전은 불리한 상황에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유용한 작전이지만 현실에서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사실을 다음의 예를 통해 알아보자.

상국이가 총알 한 발이 들어간 총을 들고 있고, 이런 상국이를 총이 없는 열 명의 적들이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다른 열 명의 적들은 상국이의 총에 총알이 한 발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경우 상국이는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

한 가지 선택은 열 명 중 한 명에게 총알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럼 한 명을 제압할 수는 있지만 남은 아홉 명이 달려들어 상국이를 때릴 것이고, 친구가 총에 맞아서 화가 난 아홉 명에게 보통보다 훨씬 심하게 맞는 것은 물론 나중에 체포되어 중형을 살게 될 것이다. 이에 비해 비굴하긴 하지만 그냥 총을 쏘지 않고 항복하면 열 명의 적에게 좀 맞을 수도 있지만 때리는 강도가 훨씬 약할 것이고 체포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상국이가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면 총알 한 발을 가지고 열 명과 대치하기 보다는 총을 내려놓고 항복하게 될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한 놈만 골라서 패 (또는 쏴)’ 작전은 제 정신의 사람이라면 사실 구사하기 어려운 작전임을 할 수 있다.

지금 북한의 처지가 이런 것 같다. 사용하면 바로 한국과 미국의 공격을 받아서 정권이 무너지는 핵폭탄과 미사일 몇 개를 가지고 주변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북한의 정권이 제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로 이런 무기들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위협에도 한국과 동맹국들을 아주 큰 걱정은 하지 않는 듯하다. 문제는 북한의 현 정권이 제정신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보아서는 북한 정권이 제정신임에도 제정신이 아닌 척 연기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주변의 누구도 이런 북한의 연기에 넘어가 주지 않아서 더욱더 입장이 곤란해지는 것이리라. 거짓 연극이 통하지 않아서 겸연쩍은 이 장면을 북한이 어떤 핑계를 대고 빠져나올지가 관전 포인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