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건설은 올 1분기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루와이스 정유공장 확장 공사에서만 4050억원 손해를 봤다. 수주액은 4조3000억원이었다. 2010년 공사를 따냈으니 3년 동안 고생하고도 빚만 엄청나게 지고 돌아온 셈이다. 이 밖에도 사우디아라비아 에틸렌 비닐아세테이트 생산시설 공사(810억원 적자), 바레인 밥코 폐수처리시설 공사(150억원 적자), 쿠웨이트 아주루 송수(送水)시설 공사(150억원 적자), 캐나다 블랙골드 오일샌드 사업(130억원 적자) 등 해외에서만 5500억원 손실을 봤다. 지난해 4분기에도 UAE 파이프라인 공사를 하면서 1100억원 손실을 보는 등 해외 공사 성적이 '손실률 11.4%'를 기록했다. 임병용 GS건설 경영지원총괄 사장(CFO)은 "현장 공사 관리와 원가 계산에서 혼란이 심했고 부정확했다"면서 "해외 프로젝트 수주 정책을 수익성 위주로 바꾸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건설 '부실 폭탄' 더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GS건설처럼 '부실 폭탄'을 안고 있는 대형 건설사가 적잖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09년 이후 UAE·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등에서 대규모 공사 발주가 이어지면서 건설사 간 경쟁이 치열해졌고, 국내뿐 아니라 이탈리아·스페인·미국 등 해외 업체까지 뛰어들어 저가 입찰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경쟁이 과열됐던 2009~2011년 국내 건설사 해외 수주액은 1800억달러. 당시에도 '속 빈 강정'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문제는 이 시기 따냈던 공사들이 지난해부터 줄줄이 준공하면서 계산서가 나오고 있다는 것. 만약 GS건설처럼 수익률이 마이너스 10% 이상이면 국내 건설사들이 입는 손해는 20조원을 넘게 된다.

삼성엔지니어링도 올해 사우디아라비아 마덴 알루미늄 공장(수주액 6600억원), 미국 다우케미칼 공장(4600억원), UAE 보루쥐 석유화학 플랜트 확장(1900억원) 등이 끝나는데, 증권가에선 이미 "무리하게 수주한 악성(惡性) 해외 현장으로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엔지니어링은 해외 수주 경쟁이 격화됐던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304억달러를 수주, 국내 건설사 중 1위를 차지했다.

올 1분기 GS건설은 아랍에미리트(UAE) 루와이스 지역에서 정유 공장 확장 공사를 하다 4050억원가량 손실을 입었다. 루와이스 현장 중 한 곳에서 증류탑 등 중요 설비를 설치하는 모습. /GS건설 제공<br>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외형 실적에만 급급한 풍토가 문제

1분기 적자를 기록한 GS건설 '실적 쇼크'로 해외 건설의 문제점이 일부 드러났지만, 그 밑에는 구조적인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

저가 수주라도 공사를 따내야만 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 해외 수주가 곧 회사의 실적이자 최고경영자(CEO) 치적이 되는 상황이라 저가 수주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이번에는 저가로 따내더라도 다음에 수익성 좋은 공사로 만회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간부들이 많다"고 전했다.

현대건설현대차그룹이 인수한 뒤인 2011년 해외 수주액이 47억달러로 전년 110억달러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이전 경영진이 무리하게 적자(赤字) 해외 공사를 남발했다고 보고, 내실을 강화한다는 방침에 따라 외형을 줄인 것이다.

해외 발주처에서도 건설사 간 경쟁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전에는 공사 실적과 평가 등을 바탕으로 선별적으로 입찰자를 초청했으나, 2009년 이후부터는 일정 수준 요건만 갖추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에는 1억달러 규모 공사라면 시공 능력이 있는 4~5개 건설사만 불러들였으나, 이제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면서 입찰 때마다 10개사 이상이 몰리는 것이다. 자연히 입찰가를 낮춰 써내는 ‘덤핑 경쟁’ 저가(低價) 수주전이 심화했다.

카타르에서 공사를 하는 대형 건설사 A전무는 “발주처에서 건설사들을 서로 부추겨 공사 금액을 낮추려고 시도할 때가 많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입찰에 나선다”고 말했다.

저가로 공사를 따내고 난 뒤 발주처에서 설계나 자재를 멋대로 바꿔 공사 비용이 예상보다 늘어나는 경우도 많다. 공사 단가가 올라갔으니 발주처와 협상을 통해 늘어난 비용을 받아야 하는데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무작정 손실을 떠안는 사례도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20년 이상 해외 수주 분야를 맡았던 한 건설사 상무는 "지금이 해외 건설업계 위기"라
며 "도를 넘은 경쟁으로 수익률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 뭔가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