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자금난을 겪는 조선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조선사 제작금융 프로그램’을 도입했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지원 건수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12일 금융위원회와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조선사 제작금융 프로그램을 도입한 정책금융공사·산업·국민·우리·신한·하나·한국외환은행중 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을 제외한 시중은행은 대출 실적이 한 건도 없었다. 정책금융공사는 지난해 9월 이후 STX조선해양에 1500억원, 현대중공업##에 2000억원 등 총 3500억원을 지원했고 산업은행도 현대중공업에 2000억원을 대출해줬다.

금융위는 정책금융공사,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과 시중은행이 총 4조원의 제작금융(키워드 참조)을 지원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시중은행이 대출을 꺼리면서 차질을 빚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대출을 안 하는 이유는 조선업 경기가 여전히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장금리가 낮아지면서 우량한 조선사들은 직접 회사채를 발행하기 때문에 돈을 빌려쓸 일이 없고 비우량 조선사들은 신용위험이 크기 때문에 선뜻 돈을 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몇몇 은행들은 금융위의 당초 계획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금융위는 시중은행들이 조선사에 필요한 자금을 원활하게 지원하면 해외 시장에서 국내 조선업계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대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조선업 경기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무작정 대출해줄 은행이 있겠느냐”며 “정부 기관이 보증을 서지 않는 한 앞으로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이 조선사에 대출을 꺼리면서 제작자금 대출은 수출입은행으로만 몰리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1조9000억원의 선박 제작금융을 지원할 계획이었으나 3조5000억원으로 목표 금액을 증액했고, 승인금액은 3조8213억원에 달했다. 올해는 2월까지 승인금액이 1조266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627억원의 1.7배를 기록했다. 2월까지 승인한 금액은 올해 목표금액 3조3000억원의 40% 수준이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과거엔 발주처가 선박대금을 지급할 때 20%씩 5번에 걸쳐 100%를 줬는데 금융위기 이후 잔금 비중이 60%로 높아지면서 제작금융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며 “기업 수요를 보고 올해 제작금융 목표금액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작금융

선박이나 플랜트처럼 제작에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지만 잔금을 받을 때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는 경우 제작기간에 필요 자금을 대출하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