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볼 목록을 분명히 외웠는데 도저히 처음 살 물건이 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책을 읽고 나면 예전과 다르게 첫머리가 가물가물하다. 지금 그대로 두면 몇 년 뒤 알츠하이머 치매 같은 뇌 건강의 적신호가 올지도 모른다. 노년기에 문장의 첫 단어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뇌 인지능력 저하의 전조(前兆)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글이나 목록에서 앞쪽 단어를 뒤쪽보다 더 잘 기억한다. 앞쪽을 더 자주 보기 때문이다. 이른바 '초두(初頭) 효과(primacy effect)'이다. 또 끝 단어는 가장 나중에 본 것이라 가운데 단어보다 더 잘 기억한다는 '최신 효과(recency effect)'도 있다. 즉 문장에서 앞쪽 단어와 끝 단어, 가운데 단어 순으로 잘 기억한다는 말이다.

미국 네이선 클라인 정신의학연구소의 포마라(Pomara) 박사 연구진은 60~91세 노인 204명을 대상으로 단어 기억력과 인지 능력의 변화를 분석했다. 실험을 시작할 때는 모두 정신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 중 70명은 4년 뒤 첫해보다 뇌 인지능력이 떨어졌다. 104명은 변화가 없었다. 인지능력이 떨어진 사람들은 처음에 앞 단어 기억력이 눈에 띄게 낮았다. 가운데나 끝 단어 기억력은 인지능력이 떨어진 집단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에 차이가 없었다.

앞선 연구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인 해마가 손상을 입으면 초두 효과가 줄어드는 것으로 확인됐다. 알츠하이머 치매환자도 같은 증세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