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기흐름에 대한 정부의 판단을 엿볼 수 있는 '그린북(최근 경제동향)' 3월호는 우울 일색이었다. 기획재정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 펴낸 이번 그린북에서 고용을 포함해 생산ㆍ소비ㆍ투자가 모두 부진하다고 진단했다.

내수 전반이 부진한 것을 감안하면 정부가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이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안 표류로 경제부총리 임명이 지연되면서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선은 오는 14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결정에 쏠리고 있다. 재정당국이 대응하기 어려운 이 시점에서 통화당국이 나서야 할 차례가 아니냐는 관측이다. 그러나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이번달은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 편이다. 통화당국은 독립적으로 운영되지만 아무래도 경제부총리 취임 이후 재정당국과 조율하고 나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에서다.

7일 기획재정부는 그린북 3월호에서 "우리 경제는 물가 안정 흐름이 이어지고 있지만 고용 증가세 둔화가 지속되고 생산ㆍ소비ㆍ투자 등 주요 실물 지표가 다소 부진하다"고 판단했다. 지난달엔 "생산ㆍ투자ㆍ수출이 개선됐다"고 평가했지만 지난 1월 산업활동 동향이 일제히 전달 대비 마이너스(-)로 꺾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문구 전반이 하향 수정됐다.

대외 위험에는 지난달과 비교해 '이탈리아의 정치 불안'이 새롭게 포함됐다. 미국의 재정 관련 위험, 유럽의 경제 회복 지연이 지속되는 중에 대내 불확실성도 상존한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내수 부문을 중심으로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 대응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대외적으로는 금융 시장 여건들이 안정되고 있지만 국내 경기 회복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도 "유럽을 제외하고는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의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사정이 좋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의 고용, 소비 지표는 양호한 흐름을 잇고 있다. 중국도 수출 증가율이 두 달 연속 두자릿수를 기록하는 등 기지개를 켜고 있다.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기 위해 공격적인 엔저 정책을 펼치고 있는 일본은 최근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상향 조정했다.

여야의 첨예한 대립으로 새 정부 경제팀 출범이 늦어진 가운데 내수 부진이 더욱 심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통화 당국이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원화 강세로 수출 경쟁력이 약화한 상황에서는 통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복지 재정 부담으로 재정 당국의 추가 여력이 크지 않은 것도 통화 당국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요인이다.

정영식 연구원은 "일본의 엔화 약세가 펀더멘털보다는 일본은행(BOJ) 통화정책의 결과물인 만큼 우리 통화 당국도 (금리 인하로)대응할 근거가 있다"며 "다만 대외 경제 상황이 나아지는 점은 고려해야 할 요인"이라고 말했다. 신민영 연구위원도 "국내 경기가 세계 경기에 비해 좋지 않은 현 시점에서, 통화 당국의 금리 인하는 경제 주체들의 심리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