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층에, 웬만한 집 침실 수만큼이나 욕실이 달린 집. 소수의 ‘그들’만을 위한 비싼 집이기에, 혹시 ‘격’이라도 떨어질까 분양가 에누리는 턱도 없는 곳. 상품으로 따지자면 ‘한정판’에 해당할 펜트하우스에 관한 고정관념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시장 상황이 달라지면서 펜트하우스의 속성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중대형만 고집했던 면적이 중소형까지 확산했고, 도도하기만 했던 분양가는 할인 판매로도 이어지고 있다.

펜트하우스의 이유 있는 변신인 것이다.

◆ 에누리가 없다?

고가 주택을 선택하는 소수 부유층에겐 가격은 곧 품질이자 자존심. 이 때문에 건설사도 펜트하우스와 같이 소수를 위한 한정된 물량을 선보일 때는 고가 경쟁이 필수였다.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할수록 비싸면 비쌀수록 잘 팔리는 것이 통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체된 주택 시장은 콧대 높던 펜트하우스의 분양가도 끌어내렸다.

계약자 맞춤형 분양 전략을 통해 펜트하우스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주상복합 아스테리움 서울 전경

서울 용산구 동자동 주상복합 '아스테리움 서울'은 분양가 23억7800만~27억6000만원의 전용 181·208㎡의 펜트하우스 할인에 들어간다. 분양대금 납부와 이자 지원 등 계약자가 원하는 방식의 맞춤형 분양 전략을 통해 분양가 할인 혜택을 주는 것이다. 이 경우 계약자들은 분양가의 20%가량 할인 효과를 보는 셈이 된다.

이미 준공된 서울 중구 회현동의 주상복합 'SK리더스뷰' 최상층의 28억원짜리 전용 244㎡ 펜트하우스를 28% 할인해 20억3700만원에 판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중대형만 있다?

펜트하우스가 중대형에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 이미 상당수 건설사는 전용 85㎡의 국민주택 규모의 중소형 펜트하우스도 선보이고 있다.

중소형 아파트에 수요가 몰리면서 펜트하우스도 규모나 겉치장보다 실속을 강조하는 추세로 바뀐 것이다.

SK건설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에 짓는 '수원 SK스카이 뷰'에 전용 84㎡ 펜트하우스를 내놓았다. 중견 건설업체 한양도 지난해 초 수원 광교신도시에서 분양한 아파트에서 전용 84㎡ 펜트하우스를 내놔 청약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분양가도 4억2400만원으로 같은 크기의 일반 주택형 분양가보다 4000만~5000만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작년 11월 경기 동탄2신도시에서 분양된 '힐링마크 금성백조 예미지'는 84㎡ E·F·G타입을 최상층 펜트하우스로 꾸몄다.

◆ 비싸서 잘 안 팔린다?

통상 펜트하우스의 면적이 전용 200㎡는 훌쩍 넘기기 일쑤다 보니 '수십억원씩 내고 대궐 같은 집에서 살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상당수 분양 현장에선 분양주택 중 일반 가구보다 소수만을 위한 펜트하우스가 더 빨리 팔린다.

얼마 전 청약이 이뤄진 '송도 더샵 마스터뷰' 아파트는 1861가구에 1721명이 청약하며 미달됐다. 특히 중대형 면적은 기대에 못 미치는 청약 성적을 냈다. 하지만 34층 최상층에 펜트하우스(16억원)로 공급한 전용 196㎡는 5가구 모집에 55명이 몰리며 11대 1의 높은 청약경쟁률을 보이며 인기를 끌었다.

대우건설이 지난해 6월 분양한 '송도 아트윈 푸르지오2차'도 3순위 청약까지 가서야 대부분 주인을 찾았지만, 펜트하우스로 나온 전용 210.15㎡형은 1순위에서 청약경쟁률 3대 1로 조기 마감했다. 210.10㎡형도 3순위에서 2대1로 청약 마감됐다. 특히 2가구만 나온 210.15㎡형은 210.10㎡형보다 분양가가 1억원이나 더 비싼데도 분양은 먼저 끝났다.

‘송도 센트럴파크’도 마찬가지다. 이 단지는 일반분양 535가구 모집에 1585건이 접수해 평균 2.9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12가구(163~215㎡)뿐인 펜트하우스는 경쟁률이 5.42대 1에 달했다.

금호건설이 오랜 기간 미분양으로 고전한 ‘리첸시아 중동’의 경우 펜트하우스(190·255㎡형)는 초기에 팔려나갔다. 전남 여수 ‘엑스포 힐스테이트’도 아직 일부 미분양이 남아 있지만, 전용 150㎡ 펜트하우스 10가구는 모두 조기에 주인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