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요금 올리자니 물가 걱정, 놔두자니 공기업 재무건전성 악화

기획재정부가 공공요금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권 초기부터 물가를 집중 관리하기 위해 공공요금 인상 억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부터 공공요금 억제 정책이 계속되면서 공공기관의 부채도 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재정부가 공공요금에 대해 산정기준을 개정하고 원가정보공개를 체계화하는 전략을 택한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공공요금을 '올린다' 혹은 '올리지 않는다' 결정하기 보다는 공공요금의 실태를 정확히 공개해 추후 공공요금 인상 여부에 대한 결정 근거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 정권 초기 물가단속 강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첫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서민부담이 완화될 수 있도록 가격 인상 요인을 최소화하고 부당·편승 인상은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등 관계 당국이 물가안정을 위해 더욱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주문했다. 이명박 정부가 초기 물가관리 실패로 서민부담을 가중시켰다는 점을 반면교사 삼아 물가관리를 첫번째 과제로 선택하고 초강경 대응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대통령이 물가를 거론하자 기획재정부도 부랴부랴 물가관계부처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특히 서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요금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재정부는 일단 전기나 가스 등 중앙공공요금에 대한 추가인상을 억제하고 향후 인상요인은 경영효율화 등을 통해 최대한 흡수한다는 방침이다. 또 상·하수도 요금과 같은 지방공공요금은 지자체와의 협조를 통해 공공요금이 일시에 오르는 것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 지방 공기업 5곳 중 1곳 부도위기

그러나 재정부 입장에서는 공공요금 인상을 무작정 막고만 있기 힘든 것이 문제다. 지난 정부에서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공공요금 인상이 억제돼 계속해서 요금 인상 억제 기조를 유지하기 부담스러운 것이다. 무엇보다 공기업들의 재정상태가 나빠 공공요금 억제 정책을 이어가는데 어려움이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지방 공기업의 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지방 공기업 5개 중 1개는 부도 위기에 처한 상태다. 지방 공기업 379개 중 돈 벌어서 이자도 못 내는 지방 공기업이 전체의 40%에 이르고,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곳도 69개다. 특히 공공요금으로 먹고 사는 지하철공사나 하수도 관련 공기업의 손실이 큰 상황이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지하철공사의 손실 누적액은 7조원, 하수도 관련 공기업은 3조원이다. 공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을 올리기 위해서는 공공요금 인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금융연구원 등 민·관 연구기관이 지난달 27일 공동 발간한 '거시경제금융안정보고서'에서도 공기업들의 부채 문제를 우리 경제의 위험 요소로 거론하면서 "요금인상 억제로 인해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공기업의 경우에는 요금 정상화 등을 통한 재무구조개선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원가검증 시스템 구축해 투명성 강조

재정부는 이같은 공공요금 딜레마에 대해 공공요금 원가검증 시스템 구축을 통해 해결책을 찾고 있다. 공공요금의 원가는 지금도 전기나 가스, 광역상수도 등 6개 요금에 대해서는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공기업에서 원가를 직접 책정해 밝히고 있어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원가에 어떤 항목들이 반영됐는지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관이 가져오는 원가 계산 자료를 재정부가 직접 검토해서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해서 원가 대비 요금이 비싸면 공공요금을 억제할 수 있고 반대로 원가가 요금보다 비싸면 공공요금을 인상시킬 수 있는 확실한 근거로 삼겠다는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원가검증 시스템 구축이 물가 대책으로 나왔지만 반드시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투명하게 공개되는 만큼 향후 공공요금 인상 근거로도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