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18대 대선)엔 그냥 넘겼지만 5년 뒤(19대 대선), 10년 뒤(20대 대선) 순환출자에 대해 또 어떤 결정이 내려질 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현대차그룹 관계자)

현대·기아차에 있어 순환출자 해소는 ‘5년짜리 시한폭탄’ 같은 문제다. 비록 박근혜 대통령이 기존 순환출자는 허용키로했지만, 매 5년 마다 찾아올 정권 교체기에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다음 대선에서 후보들이 ‘경제 민주화’ 공약을 일제히 내건다면 순환출자 문제는 필연적으로 현대·기아차를 옥죌 수 밖에 없다.

이는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와도 맞물리면서 좀처럼 해법을 도출하기 어려운 골칫거리로 부상했다.

◆ 5조원 규모 현대모비스 주식이 문제

현대차 지배구조.


현재 현대·기아차그룹은 현대차가 기아차를, 기아차는 현대모비스##를, 현대모비스는 다시 현대차를 지배하는 전형적인 순환출자 지배구조를 띄고 있다. 현대차 지분 5.17%만을 보유한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를 실질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것도, 현대차 최대주주(지분율 20.78%)인 현대모비스 지분을 정몽구 회장이 6.96%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순환출자 지배구조는 경영 투명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지적돼 왔다. 2006년 불거진 현대글로비스 비자금 사건과 1995년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비자금 조성 사건 역시 소수 지분을 가진 오너 1인이 그룹 전체를 장악한 후진적 구조 탓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비자금 사건 직후 사재출연과 경영 투명성 제고 등을 약속했지만, 아직 지배구조 개선 작업은 손 조차 대지 못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이 이 같은 순환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출자 고리 중 하나를 끊어 수직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현대모비스를 지주사로 만들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방법이다.

이미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지분 20.78%를 보유하고 있어 지주사로서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 되려면 우선 기아차가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 16.88%를 매각해야 한다. 이 경우 순환 출자의 고리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단순화 된다.

관건은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16.88%를 누구에게 매각하느냐 하는 점이다. 단일 기관이나 기업에 매각하기에는 경영권과 관련이 있어 위험부담이 크다. 4조9787억원(25일 종가 기준)이나 하는 주식을 장내 풀기도 여의치 않다.

정몽구 회장이나 정의선 부회장이 인수하려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다른 주식 일부를 팔거나 현대모비스 지분과 교환하는 형태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 경우 특혜시비가 일 수 있어 위험성이 따른다.

◆ 현대글로비스로는 역부족

현대모비스 외에 현대글로비스를 지주회사로 세우는 방법도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 지분 4.88%를 이미 보유한데다,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 31.88%를 가진 최대주주다. 만약 현대글로비스가 현대·기아차그룹의 지주사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정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 방안이 관철되려면 현대글로비스가 현대차 지분을 대량 매집해야 한다. 비록 현대글로비스가 계열사 지원에 힘입어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지만, 현대차 지분을 사들이기에는 여력이 부족하다. 작년 9월말 기준 현대글로비스의 자산에서 부채를 뺀 자본은 1조6950억원에 불과하다.

유지수 국민대 총장(경영학과 교수)은 "대기업에 대한 견제 여론이 팽배하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한다는 여론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순환출자 해소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향후 비(非)지주회사 체제인 대기업들의 난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 후계구도는 어떻게

이와 함께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역시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숙제다. 같은 재벌 3세인 이재용 삼성전자부회장이 삼성에버랜드(지분율 25.1%)를 통해 삼성그룹 지배권을 공고히 한 것과는 대비된다.

현대·기아차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서는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중 한 곳의 지분을 대량으로 보유해야 한다. 그러나 정 부회장은 현대차·기아차의 주식을 조금씩 가지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 부회장이 가진 현대글로비스(31.88% 이하 지분율)·현대엠코(25.06%)·이노션(40%)·현대오토에버(20.10%)·기아자동차(1.75%) 등의 지분을 계열사에 팔고, 이 돈으로 현대모비스 신주를 매집하는 방법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를 위해 계열사가 편법 동원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이노션, 현대오토넷 등의 대주주지만,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지분은 소량만 보유하고 있다. 정 부회장이 2010년 G20 정상회의에 앞서 에쿠스 의전차량을 전달하는 모습.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현대글로비스를 지주사를 만들면 경영권 승계 문제 역시 해결되지만, 아직 현대글로비스의 지주사 등극 여력이 부족하다.

업계 관계자는 “역설적으로 현대·기아차그룹이 최근 단기간에 사세가 크게 확장돼 지분 매집에 들어가는 비용이 늘어난 점도 지주사 체제 변경과 경영권 승계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