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인 금호산업의 예금계좌를 가압류했다. 금호산업이 대출금을 갚지 않고 마땅한 담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채권은행이 대기업 예금계좌를 가압류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채권단 내부 갈등이 불거지면서 금호산업의 경영 정상화가 또 타격을 받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우리은행은 이달 초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금호산업의 산업은행 예금계좌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했고 법원이 지난주에 이를 승인했다고 19일 밝혔다. 산업은행은 금호산업의 주채권은행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2006년 금호산업이 베트남 법인인 금호아시아나플라자사이공(KAPS)을 설립할 당시 590억원을 빌려줬다. 최근 금호산업이 KAPS 지분 50%를 아시아나항공(020560)에 매각하자 우리은행은 금호산업에 대출금의 절반인 295억원을 상환하라고 요구했다. 금호산업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이를 거부하자 우리은행은 KAPS 잔여 지분을 담보로 제공하라고 요구했고 산업은행이 또 거부하자 약 300억원의 KAPS 매각대금이 있는 예금계좌를 가압류한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금호산업이 우리은행에서 빌려간 590억원은 채권단 협약채권이 아니라 비협약 채권이기 때문에 워크아웃 진행과 관련이 없는데도 금호산업과 산업은행은 워크아웃을 이유로 지분 담보 설정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우리은행만 돈을 빼가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이 금호산업 주채권은행을 했을 때는 다른 채권자의 비협약 채권에 대해 출자전환을 권유하다가 주채권은행이 산업은행으로 바뀌니 자신들은 비협약 채권 전액을 회수하려고 한다”며 “금호산업 채권자의 비협약 채권 회수율은 평균 28% 수준에 불과한데 우리은행이 100%를 가져가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금호산업 예금계좌를 가압류했지만 금호산업의 워크아웃 일정에는 큰 차질이 없을 전망이다. 금호산업 관계자는 “KAPS 매각대금은 차입금 상환이나 운용자금으로 쓸 예정이었는데 다소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면서도 “회사가 보유한 수십개의 예금계좌 중 하나의 계좌에 대해서만 가압류한 것이어서 워크아웃의 전체 일정은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채권자가 우리은행처럼 금호산업 자산에 연쇄적으로 가압류를 걸면 운용자금이 묶이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산업은행과 우리은행 등 금호산업 채권단은 오는 21일 채권단협의회를 열고 이 안건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이 가압류를 풀지 않는 한 서로 협의하는 수밖에 없다”며 “채권단협의회에서 다른 채권자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대응 방안을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