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엔화대출을 원화대출로 바꾸면 금리 인하나 수수료 면제 등의 혜택을 주는 은행들이 늘고 있다. 엔화 강세로 엔화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게 늘었던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원화대출로 전환하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화대출 전환에 대한 문의는 많지만 엔화 가치가 더 내려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실제 원화대출로 갈아타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 엔화 값 추가 하락 기대에 원화대출로 전환 드물어

10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ㆍ기업ㆍ신한ㆍ우리ㆍ하나 등 5개 은행의 엔화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6851억엔에서 지난달 말 6754억엔으로 1.4% 줄어드는데 그쳤다. 이들 은행은 엔화 대출자가 원화대출로 갈아탈 경우 우대금리를 적용하거나 중도상환 수수료를 면제해주고 있다. 그러나 대출자들은 환 위험을 줄이고 싶어도 엔화 약세가 더 이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에 엔화대출 상환을 망설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초부터 엔화대출을 원화대출로 바꿀 경우 대출금리를 최고 1%포인트 낮춰주고 환율 우대 혜택을 주는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서비스를 시작한 후 원화대출로 전환한 건수는 아직 한자릿수에 그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점에 원화대출 전환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대부분은 엔화 값이 얼마나 더 내릴지, 언제 바꾸는 게 가장 유리한지를 물으며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은행도 원화대출로 바꿀 경우 1%포인트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상품을 판매 중이다. 지난달에는 7건의 원화대출 전환이 이뤄졌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현재 환율 수준에서 원화대출로 갈아타도 손해를 보지 않을 고객에게만 상품을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은행도 적극적인 전환 권유 부담스러워

2008년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국내 은행을 통해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저금리로 엔화를 빌려 원화로 바꿔다 쓰는 엔화대출이 성행했다. 그러나 100엔당 800~900원 수준이던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이 한때 1500~1600원대로 치솟으면서 엔화대출자가 갚아야 할 원리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나 최근 100엔당 원화 환율은 1100원대까지 떨어졌다(원화 가치 상승).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도 지난해 말 86엔대에서 이달 8일에는 93엔대로 올랐다(엔화 가치 하락).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UBS와 골드만삭스 등 12개 해외 투자은행들은 올해 3월 말쯤에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이 최고 88엔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으나 예상보다 엔화 환율은 더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은행들이 원화대출 전환을 권유하는 데는 엔화 차입 비중과 연체율을 줄이기 위한 의도가 깔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엔화대출이 고정된 것보다 오래된 여신을 정리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다만 은행들이 원화대출 전환을 적극적으로 유도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환율 변동을 예측하기 쉽지 않고 추후 고객 항의가 빗발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이 시켜서 바꿨는데 손해를 봤다는 항의가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은행들이 대출자에게 엔화대출을 원화대출로 바꿀 때 생길 수도 있는 위험사항에 대해 철저히 알려주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