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아시아 지역에 제품을 수출하는 중소 제조업체 A사는 요즘 특허 비용 때문에 고민이 많다. 10년이나 연구개발(R&D)에 투자해 만든 제품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각국에 특허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데, 여기에 6억원 정도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A사 전략기획본부장은 “우리 같은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특허 비용이 만만치 않아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책을 찾아봤지만, 관련 제도가 없었다”면서 “회삿돈으로 고스란히 충당해야 하는데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가 각종 중소기업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이 꼭 필요로 하는 지원책은 찾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관련부처 공무원들이 중소기업 경영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생색내기식 지원책만 내고 있기 때문이다.

◆ 중소기업 해외 진출은 ‘제자리걸음’

기업 전문가들은 내수 시장 중심의 중소기업이 한계를 벗어나려면 적극적으로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중소기업 정책을 강조하면서 중소기업의 해외진출과 관련된 제도에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소기업의 해외진출 지원책은 10년째 제자리걸음으로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은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진출 현황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09년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액은 767억 달러로 전체 수출(3635억 달러)의 21%를 차지했지만, 2011년에는 오히려 19% 아래로 감소했다. 세계 경제 악화로 수출 환경이 나빠지자 경쟁력이 약한 중소기업이 더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중소기업의 해외 투자 역시 제자리걸음이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의 투자 금액은 지난 2009년 33억 달러에서 2011년 38억 달러로 15%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대기업의 투자액이 166억 달러에서 207억 달러로 25% 가까이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중소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탓도 있지만, 정부 기관의 지원 내용이 비슷하거나 오래된 것이 많아 중소기업의 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현실 반영한 지원책 나와야”

현재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진출 지원 정책은 지식경제부와 중소기업청 등 정부부처와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중소기업진흥공단, 코트라, 그리고 경제 단체인 한국무역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에서 다양하게 시행하고 있다.

중진공은 중기청에서 위탁해 운영하는 중소기업 수출 역량 강화사업 등 총 11개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해외 마케팅을 지원하기 위한 수출 지원 사업과 사절단 파견, 수출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수출 인큐베이터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중진공은 수출에 필요한 자금 지원 사업과 해외 민간 네트워크 활용 사업도 펼치고 있다.

세계 각국에 해외 무역관을 운영하는 코트라는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초기 중소기업에 필요한 정보 제공에 주력하고 있다. 또 코트라는 해외 전시회 지원과 무역사절단 파견, 해외 시장 조사 사업도 담당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기관의 지원이 대동소이해 중복되는 내용이 많고, 해외진출 성숙기에 도달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방안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수출 인큐베이터와 사절단 파견 등 10년 전과 같은 내용의 지원 방안이 예산만 늘려잡는 형태로 재탕 돼 지금의 중소기업 경영 환경에는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해외 진출에 필요한 인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는 B 중소기업 관계자는 “유관 기관이 제공하는 해외진출 지원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같이 마케팅 지원과 사절단 파견, 금융 지원 등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중소기업이 필요한 것은 지원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업은 해외 바이어들에게 제품을 설명하고 협상할 인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담당자가 2~3년을 버티지 않고 이직하는 경우가 많아 꾸준히 근무할 경력자를 찾고 있지만 지원받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성장을 강조하는 새 정부가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할 때 중소기업이 겪는 현실적인 애로사항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