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국내 은행들이 발행하는 글로벌 채권(전 세계 투자자를 대상으로 미국에서 발행하는 달러화 채권)의 만기가 3년으로 짧아지고 있다.

지난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국내 은행들은 만기 5년~5년5개월짜리 글로벌 채권을 주로 발행했다. 은행 입장에서는 채권 만기가 짧을수록 비용이 덜 들기 때문에 3년물 발행을 원해도 이를 찾는 해외 투자자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 세계 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될 것으로 보는 해외 투자자들이 늘면서 국내 은행들의 3년 만기 글로벌 채권 발행이 이어지고 있다.

3일 은행권에 따르면 올 들어 공모형 글로벌 채권을 발행한 국내 은행 4곳(국민ㆍ산업ㆍ신한ㆍ하나) 가운데 신한은행을 제외한 3곳이 3년 만기 채권을 발행했다. 산업은행은 10억달러를 조달하면서 3년물과 5년물을 절반씩 발행했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30일 5억달러 규모로 3년 만기 글로벌 채권을 발행했다. 금리는 미국 3년물 국채 금리에 1.05%포인트를 더한 1.375%로 정해졌다. 입찰에는 목표 발행금액의 3배가 넘는 15억달러가 몰렸다. 특히 단기물 투자를 선호하는 아시아 지역 투자자 외에도 미국 투자자들이 이번 입찰에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달 15일에는 국민은행이 올해 국내 시중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3년 만기 글로벌 채권을 발행했다. 발행액은 3억달러였다. 국민은행은 해외에서 주로 만기 5년짜리 채권을 발행했으나 최근 투자자들의 성향이 단기물로 바뀌면서 3년 만기 채권에 도전했다.

박준석 하나은행 국제금융부 차장은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금리가 5년 이내에 인상될 것으로 보는 투자자들이 많았다”며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그런 리스크(위험)를 줄이기 위해서 만기가 짧은 채권을 더 찾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채 국민은행 자금부 팀장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제시한 기준금리 인상 조건을 보면 2015년쯤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며 “투자자 입장에서는 단기 채권에 투자했다가 금리가 올라가는 시점에 금리가 더 높은 채권으로 갈아타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국내 은행들은 미국에서 글로벌 채권을 40차례 발행했다. 이 가운데 3년물은 신한은행이 2009년 6월 5억달러 규모로 발행한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지난해 9월 IBK기업은행이 3년 만기로 3억달러를 조달하며 다시 등장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한국수출입은행이 3년 만기로 10억달러를 조달했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만기가 5년~5년5개월짜리였고 간혹 10년 이상인 경우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국내 은행들이 잇따라 3년 만기 글로벌 채권을 발행할 수 있었던 것은 조달비용을 아끼려는 은행과 투자 위험을 줄이길 원하는 해외 투자자의 수요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해석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우리나라 국가 신용등급이 높아진 것도 시중은행들이 해외에서 만기가 더 짧은 채권을 발행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