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00원에 근접한 반면, 엔·달러 환율은 장중 90엔선까지 치솟으면서 수출 경쟁국 일본에 대한 경계령이 떨어졌다. 엔·달러 환율이 높아지면(엔화 가치 하락) 해외 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가격이 싸지는, 일종의 ‘바겐 세일’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동차·IT 분야에서 일본과 경쟁하고 있는 우리나라 업체들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시장을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원달러 환율이 바닥인 가운데, 엔달러 환율이 상승하면서 수출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지난달 부산항에서 수출입 물량을 선적하고 있는 모습.


◆ 도요타, 엔·달러 1엔 오르면 영업익 350억엔 늘어

18일(현지시각)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장중 한때 90.09엔까지 올랐다. 엔·달러 환율이 90엔대를 기록한 것은 2010년 6월 23일 이후 처음이다. 이는 최근 통화 정책 완화를 강조하는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원·달러 환율이 바닥인 상황에서 엔·달러 환율이 끝없이 오르자 당장 일본과 경합하고 있는 자동차·IT 업체들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자동차의 경우 지난해 연간 판매량 세계 1위를 탈환한 도요타를 필두로 닛산·혼다 등의 강력한 가격 공세가 예상된다. 노무라 증권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이 1엔 상승할 때 도요타의 연간 영업이익이 350억엔, 우리 돈 4108억원 정도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이 영업 외적인 부분에서 생기는 현금은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인센티브로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달 미국 시장에 도요타는 자동차 1대당 전년보다 7.6% 증가한 평균 1756달러의 인센티브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현대·기아차는 1573달러의 인센티브를 사용했다.

도요타는 현대·기아차의 주력 차종인 엘란트라(아반떼)에는 코롤라, 쏘나타에는 캠리, 싼타페에는 라브4라는 맞수 차량을 대거 구비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 입장에서 브랜드 이미지가 높은 일본차가 가격까지 싸다면, 일본 자동차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엔달러 환율이 오르면 타격을 받는 대표적인 분야가 자동차와 반도체다. 엔달러 환율이 오르면 일본 업체들이 생산하는 자동차와 반도체 가격이 내려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IT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비록 반도체·LCD 기술에서는 이미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SK하이닉스 등이 일본 업체들을 압도하고 있더라도, 가격 경쟁력이 크게 벌어지면 시장 점유율을 잠식당할 수 있다.

IT·자동차 업체들 모두 최근 원·달러 환율 하락 탓에 영업이익 감소 현상을 겪고 있는데, 엔·달러 환율까지 오르자 이중고에 시달릴 처지다.

◆ "환율, 2~5개월 뒤 수출에 영향"

환율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자 지난해 비교적 선방했던 무역 수지도 적자 반전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무역 수지는 어려운 대외 여건에도 불구하고 4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그러나 수출에서 IT·자동차 등 일본 업체들과 경합하는 품목이 많다는 점에서 최근의 환율동향은 수출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출산업 중 엔·달러 환율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산업은 자동차·IT·가전 순이다. 원·달러 환율에 따른 영향 역시 가전·정보통신·자동차 순으로 높았다. 3개 품목이 순서만 바뀔 뿐 달러화와 엔화 환율 변동에 모두 취약한 셈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액에서 반도체·LCD·휴대전화 등 IT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28.3%에 달했다. 자동차 역시 우리나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6%로, 단일품목 중 4위다.

정대선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업종별로 다르지만 환율은 약 2~5개월 정도의 시차를 두고 무역수지에 영향을 준다”며 “최근의 환율 동향이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됐다는 점에서 올해 상반기 수출 시장이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아직 환율에 의한 직접적인 수출액 감소 현상이 나타나지는 않았다”며 “환율 추이를 지켜보며 대책을 논의하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