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전회사업계의 맞수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새해 벽두부터 엉뚱한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갈등의 불씨는 삼성전자가 자사의 냉장고가 LG전자 것보다 용량이 더 크다는 동영상을 제작하면서부터다. 이에 LG전자가 대응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했으며, 이어 100억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하면서 확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누구 냉장고가 크냐는 유치한 신경전에서 시작된 싸움에 관심없다는 반응이다. 냉장고 크기가 900리터냐 910리터냐는 냉장고를 선택하는데 그다지 중요한 요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냉장고 크기만 키워 가격만 올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냉장고 크기 싸움에 소비자는 물론 가전제품 매장 직원까지 냉담한 반응이다. 쇼핑몰 전문상담원 A씨는 각 사의 양문형 냉장고에 대해 “양사 모두 냉장고 용량을 키우는 추세이고, 아래에 있던 냉장실을 위로 올리고 냉동실을 아래로 바꿔 배치한 컨셉도 같다"며 ”일반 구매자 입장에서는 두 제품의 차이를 피부로 느끼기는 어려워 대체로 브랜드 선호도에 따라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는 삼성과 LG 모두 냉장고 품질이나 디자인, 기술력 등의 측면에서 차별화가 어렵다 보니 광고·마케팅 경쟁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국내 냉장고 전체 시장에서 이들 두 브랜드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냉장고 시장이 다수 간 경쟁이 아닌 일대일 경쟁 구도이다 보니 두 회사의 냉장고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과 LG 냉장고 모두 '대용량'을 강조해 판매 중이다.

지난해 9월 말 신혼살림용으로 910리터 용량의 LG 냉장고를 구매한 심선경(26)씨는 “처음부터 대용량을 사려는 것 아니었다"며 ”800리터짜리 냉장고로 사려다가 나중에 아기 키울 것도 생각해 좀 더 큰 냉장고를 택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심씨는 ”삼성이나 LG 둘 중 딱히 한쪽을 더 선호하는 것도 아니었고, 당시 LG 제품이 예약 판매를 통해 더 많이 가격 할인을 받을 수 있어서 좀 더 싼 쪽을 구매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자매장 직원 B씨는 “손님에게 재질이나 냉각 방식 등에서 두 회사 제품의 차이가 있다고 설명해주기는 하지만 결국 가격 할인이나 포인트 혜택과 같은 비용 면에 따라 선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직은 여성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고 냉장고 디자인이나 광고 이미지 등을 보고 취향에 따라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냉장고 용량이 커지면서 가격만 올라간 측면도 있다. 800리터대 냉장고의 경우 200만원대에서 살 수 있지만, 단지 30리터가량 늘어난 900리터대 냉장고는 300만원대 중반을 형성하고 있다.

1위와 2위를 다투며 성장해온 LG와 삼성의 상대 제품을 비판하며 자사 제품을 내세우는 자존심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례로 지난 2011년 10월 LG전자는 옵티머스 LTE 출시 행사에서 삼성의 갤럭시S2 위에 버터를 올려놓고 녹이는 실험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갤럭시S, 갤럭시S2, 아이폰4, 옵티머스에 각각 버터를 올려놓고 나서 30분 정도가 지나자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버터가 녹아내리는 영상이었다. 당시 LG 측은 “계란프라이를 하려면 갤럭시S2를 이용하면 된다"며 삼성디스플레이의 아몰레드를 비판하기도 했다.

옥경영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누가 옳고 누가 나쁘다는 식의 싸움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제품에 대한 허위·과장된 정보가 있다면 이를 바로 잡고, 실제로 소비자들이 구매를 선택하는 전체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들을 폭넓게 제공하는데 더 힘쓸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