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투자 소비 등 국내 경기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2분기 뿐 아니라 3분기 경제성장률 집계에서도 속보치보다 잠정치가 더 낮아졌다. 예상보다 악화된 수치가 연이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3분기 성장률은 전분기대비 0.1%에 불과했다. 성장이 멈춘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0.1%) 이후 3년2분기만에 최저치다. 이에 따라 저성장의 상징인 ‘L자형 성장’이 이미 현실화했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장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야 하며 내년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보고 있다.

◆ 경기, 예상보다 나쁘다…성장률 전망치 계속 낮아져

한은은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잠정치가 제조업 생산 및 설비투자 부진 등으로 전분기대비 0.1% 증가에 그쳤다고 6일 발표했다. 지난 10월 발표된 속보치보다 0.1%포인트 더 낮아졌다. 2분기 GDP도 속보치보다 0.1%포인트 낮은 0.3%로 집계됐었다.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문제는 설비투자가 속보치보다 악화됐고 이에 따라 제조업 현황이 더 나빠진 것이었다. 3분기 설비투자는 4.8% 감소해 10월 속보치(-4.3%)보다 더 악화됐다. 제조업 GDP 증가율은 -0.2%에서 -0.4%로 나빠졌다. 경기 부진 여파로 국민소득도 악화되고 있다. 국내총처분가능소득은 2008년4분기 이후 3년3분기(15분기)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소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성장률에 대한 전망치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 한은은 지난 10월 전망 때 올해 성장률을 2.4%, 내년을 3.2%로 예상했었다. 5월 전망 때의 3.0%, 3.8%에서 대폭 하향조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은은 이날 올해 성장률 2.4%도 달성하기 어렵다고 고백했다.

민간연구소들의 성장률 전망치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 지난 2분기까지만 해도 올해 성장률 2%대 후반~3%대 초반, 내년 성장률 3%대 후반이었으나 최근에는 대부분 2%대 초반, 3%대 초반으로 하향 조정됐다. 내년에도 2%대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경고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0월 전망때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2.7%, 3.6%로 예상해 그나마 나은 정도였다. 같은 10월에 현대경제연구원은 각각 2.5%, 3.5%로 봤고, LG경제연구원은 2.5%, 3.3%로 전망했다. 11월 들어서 금융연구원은 각각 2.2%, 2.8%로 내렸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2%, 3%로 하향 조정했다.

주요 해외 투자은행(IB) 10곳 중 절반인 5곳은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2%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금융센터가 내놓은 '아시아 주요국 경제지표 전망'에 따르면 최근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등 해외 IB 10곳 중 노무라(2.5%)를 비롯한 도이치뱅크(2.6%), BoA메릴린치(2.8%), BNP파리바(2.9%), UBS(2.9%) 등 5곳이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을 3% 미만으로 내다봤다.

이명활 금융연구원 국제ㆍ거시금융연구실장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경기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며 "내년에도 가계부채 문제 때문에 소비가 부진할 것이고 수출과 투자가 회복되겠지만 그것은 하반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실장은 "경기부진과 완만하고 더딘 경기회복 사이의 중간이라고 보지만 대체적으로 '경기부진이 지속될 것'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경제연구소들 "금리인하, 재정확대 필요"

경기상황이 이처럼 악화되자 경제연구소들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와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가 안 좋을 것이라고 봤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쁘다"며 "경기 흐름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금리를 우선적으로 인하하고 재정은 건전성을 중시하면서 좀 아껴야 한다"고 말했다. 신 연구위원은 "12월에라도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명활 실장은 "정책효과가 큰 게 재정정책이기 때문에 재정건전성을 뒤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 정부가 내년 상반기 중 빨리 재정정책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실장은 "금리인하는 올해 2번 할 게 아니라 3번 했어야 했다"며 "통화정책은 재정정책에 앞서서 할 수 있기 때문에 내년 초 금리를 내려 완화기조 지속이라는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KDI도 지난달 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하면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해 경기부진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정부가 내년에 추가적인 총지출 확대를 고려하는 등 경기 대응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재정정책을 운용해야 한다"며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경기상황이 더 악화될 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신창목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지금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처럼 대규모로 과감한 정책을 펼 수는 없기 때문에 현재 스탠스를 유지하고 추경 편성도 더 지켜본 후 판단해야 한다"며 "위기가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비해 정책 여력을 비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 연구원은 기준 금리에 대해서도 "올해 이미 2차례 낮췄다"며 "시장에서는 추가인하를 점치고 있는데 너무 근시안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