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9시 50분 과천 기획재정부 기자실. 외환시장을 담당하는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최근 환율 하락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고 판단하고 공식적으로 구두(口頭) 개입에 나선 것. 같은 시각 기자회견장 한편의 환율 모니터에는 달러 대비 원화 환율 그래프가 파란색(전날보다 하락) 궤적을 이어가고 있었다.

최 차관보가 "최근 외환시장의 움직임이 좀 과하다고 생각한다"며 말문을 열자 파란색이던 그래프가 순식간에 빨간색(전날보다 상승)으로 변했다. 그는 "원화가 강세로 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결제를 미루는 '리드 앤드 래그'(lead and lag·기업들이 환율 하락을 예상해 수출로 들어오는 달러는 미리 팔고 수입에 필요한 달러는 늦게 사는 것) 현상이 나타나고 이를 부추기는 일부 딜러도 있다"며 경고했다. 그는 "쏠림 현상이 심화할 경우 정부의 소임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고, 좀 구체적인 조치를 할 단계에 가까워졌다"며 외환시장을 겨냥한 적극적인 대응 의지도 피력했다. 그의 발언이 끝나자 모니터의 환율 그래프는 거의 수직으로 치솟았다.

이날 기자회견 직전 달러당 1080원까지 떨어졌던 환율은 기자회견이 끝난 10시 30분쯤에는 1085.8원까지 상승했다. 정부의 구두 개입으로 환율을 5원가량 끌어올린 것이다. 결국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2.7원 오른 1085.9원에 마감했다.

최 차관보가 실명(實名)으로 구두 개입에 나선 것은 국제 신용 평가사인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려 환율이 급등했던 작년 9월 15일 이후 14개월 만이다. 그만큼 외환 당국이 최근 급격한 환율 하락 속도에 큰 우려감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3개월간 하락 폭이 5%에 달한다. 최 차관보는 "주요 통화 중 우리나라 통화의 절상 속도가 가장 빠른 축에 속한다"며 "(이 상태를) 그대로 두면 환차익을 기대한 자본 유입이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완화하거나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외환 당국이 환율의 급격한 하락을 막기 위해 본격적인 실력 행사에 돌입한 신호라고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기자회견에 맞춰 외환 당국의 실제 물량 개입(달러 매수)도 일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선물 이진우 리서치센터장은 "장 초반에는 달러당 1080원 선이 깨지는 분위기였는데 당국의 적극 개입으로 상황이 반전됐다"면서 "당분간 1080원 선을 지키려는 당국과 시장 간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