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100원선을 바라보며 연중 최저치(원화 강세)를 연일 갈아치우고 있어 외환당국의 움직임이 주목되고 있다.

원화 환율은 지난달 13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위원회(FRB)의 3차 양적 완화 발표 이후 한달 새 1128.4원에서 1107.2원까지 내려앉으며 그동안 지지선으로 여겨졌던 1100원선을 위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막대한 돈을 풀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의 우리나라 신용등급 상승과 상대적으로 양호한 경제 펀더멘탈을 감안할 때 환율이 중기적으로 1100선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다. 환율이 계속 떨어지면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에 타격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아직 외환시장에 특이사항이 없다고 판단한다"며 "원화 절상요인과 절하요인이 상존하는 만큼 모니티링 체제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에 개입해야 할 정도로 급격한 '쏠림현상'이 발생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로 해석된다.

◆ 외환당국 수장들 "개입할 만한 이유는 없다" 한목소리

외환 당국의 수장인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고(高)환율' 정책을 통해 수출을 늘리는 것에 대해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많을 것(that will do more harm than good)"이라고 답하며 인위적인 환율 방어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현재 (외환시장에) 개입할 만한 이유는 전혀 없다"고 강조하면서 "어느 나라나 스무딩오퍼레이션(미세조정)은 하는 만큼 환율 변동폭이 심할 경우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에 미세 조정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차관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최근 환율 움직임은 3차 양적 완화로 인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게 정부의 기본적인 스탠스지만 최근 환율 움직임에 대해서는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변지영 우리선물 연구원은 외환 당국의 이러한 메시지에 대해 "예전보다 (외환 당국이)개입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 하락세 지속되면 정부 고민할 수 밖에 없어

최근 주요국 통화의 흐름을 살펴볼 때 원화의 절상폭이 다른 나라보다 유달리 큰 상황은 아니다. 삼성증권에 의뢰해 분석한 달러화 대비 주요국의 환율 등락폭을 살펴보면 미국의 3차 양적 완화 발표 이후 우리나라의 통화가치는 달러화와 비교해 1.62% 상승했다. 위안화(0.97%), 대만달러(1.44%) 등 주요 아시아 통화들보다 상승폭이 높은 수준이지만 최근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 상승 등을 감안하면 다른 아시아 통화보다 뚜렷하게 상승폭이 크다고 보기엔 어렵다. 오히려 인도 루피화(4.53%), 말레이시아(5.01%) 등 일부 아시아 통화보다는 낮은 수준의 절상폭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주요 선진국에서 투자 자금이 이탈하면서 유로화(-0.32%), 엔화(-1.47%), 뉴질랜드 달러(-1.5%), 호주달러(-2.79%)는 달러화와 견줘볼 때 환율이 미끄러지는 모습이다. 이 밖에 스위스프랑(0.24%), 러시아 루블(0.55%)의 경우 화폐 가치가 소폭 오른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원화 환율의 변동성도 크게 낮아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원·달러 환율은 전날과 비교해 평균 3.2원 오르고 내리는데 그쳤다. 2007년 4분기에 2.8원 이후 최소치로 리먼 사태 직후인 2009년 9.4원에 비해 3분의 1수준이다. 김건우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 부문의 대외거전성이 개선되고 외환보유액이 확충된 영향이 크다"며 "자본 유출입 완화 정책 3종 세트 (선물환 포지션 한도 도입·외국인 채권 투자 과세 환원·외환 건전성 부담금 시행)도 한 몫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하락세를 지속할 경우 정부의 고민은 깊을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세계경제가 나쁜 상황에서 환율까지 절상되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어려움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연평균 환율도 1100원선 아래인 1050~1080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환율이 계속 떨어지면 정부가 용인하기 힘든 수준에 멀지 않아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환율이 하락하면 수입물가가 안정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좋게 볼 수만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