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수확철을 앞두고 연이어 불어닥친 태풍 탓에 올해 쌀 농사가 32년래 최악의 흉작을 기록할 전망이다. 21일 농림수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85만㏊에 달하는 전국의 논 가운데 태풍으로 인해 각종 피해를 본 논이 전체의 15%인 13만㏊에 이른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7일까지 볼라벤·덴빈·산바 등 3개의 태풍이 연이어 지나가면서 벼 이삭이 물에 잠기거나 쓰러져서 발생한 피해도 많았지만 올해 벼농사를 망친 주범은 태풍으로 인한 '백수(白穗)' 피해이다. 백수란 염분이 다량 함유된 강풍에 휩쓸려 벼 이삭이 수분을 뺏기면서 하얗게 말라죽는 병을 말한다. 수확기에 보통 논은 노랗게 보이지만, 백수 피해가 발생한 논은 하얗게 보인다.

백수 피해가 발생한 논은 전국적으로 11만2000㏊에 이르고, 특히 곡창지대인 전남·북 지역의 피해가 무척 큰 것으로 알려졌다. 벼가 백수에 걸리면 수확이 불가능하거나, 수확하더라도 품질이 무척 떨어지는 '쭉정이'일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지난 9월 10일 전남 영광에선 한 농민이 자신의 논을 모두 갈아엎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초 올해 쌀 농사는 풍작이 예상됐었다. 여름철에 폭염이 이어지면서 강한 햇빛이 벼 생육에는 좋은 환경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벼 이삭이 영그는 8월 하순 이후 태풍이 집중되면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올해 쌀 생산량은 1980년(355만t) 이후 32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 수확기에 비가 계속 내리는 바람에 쌀 생산량이 422만4000t으로 1980년 이후 가장 적었는데, 올해는 이 수준에도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쌀 가격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21일 기준 20㎏들이 쌀 한 가마 도매가격은 4만1800원으로 1년 전보다 7.2%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이달 초부터 '벼 백수 피해 대책 상황실'을 운영하면서, 피해를 본 농민에게 각종 보상 대책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는 백수에 걸린 벼 가운데 피해가 심한 것은 별도로 모아 사료 등으로 재가공할 예정이다. 쌀값이 불안해질 경우 공공 비축미 출하 확대 등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