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주요 기관들의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3%초반으로 계속 뒷걸음질치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상저하고(上低下高)’의 관측도 목소리를 잃고 있다.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당초 예상치보다 내려 잡는 모습이다. 잠재성장률인 3%후반~4%초반에 크게 못미치는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대세다. 경기흐름이 바닥권에서 오랫동안 맴도는 L자형을 띨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처럼 비관적인 전망이 늘고 있는 이유는 유럽 재정위기 이후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전이되면서 유럽 미국 중국 뿐만 아니라 신흥국 등 세계 경기 침체의 먹구름이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경제의 핵심 동력인 수출이 둔화 추세를 상당기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다 올해 기대됐던 내수도 맥을 못출 것이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이같은 추세를 감안하면 정부의 경기부양을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오는 28일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현재의 3.7%에서 3.3~3.5% 수준으로 낮출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국회 동의가 필요없는 각종 기금의 증액을 통해 사실상 재정집행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그러나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아직 검토하지 않는 단계다.

주요 기관들의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

◆ ‘잇따른 하향조정’ 3% 안팎까지 내려잡아‥‘상저하고’ 경기흐름 물건너가나

국내외 민간·국책연구소들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낮추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주 그리스 재총선 직후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4%에서 3.5%로 하향 조정했다. 뒤이어 LG경제연구소도 3.6%에서 3%로 낮춰 국내 주요 국책·민간 연구소 중 가장 낮은 전망치를 발표했다.

앞서 IMF(국제통화기금)는 지난 12일 정부와의 연례협의 브리핑을 통해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종전 전망치인 3.5%보다 0.25%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호아 코르 IMF 단장은 “당초 하반기에는 회복될 것으로 봤으나 그 시기가 당초 기대보다 1분기 더 늦게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올해 두 번이나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지난 4월 ‘한국보고서’ 발간을 통해 3.8%에서 3.5%로 낮춘 뒤 한 달 만에 3.3%로 다시 하향 조정했다.

또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지난 달 3.8%에서 3.6%로, 한국은행은 3.7%에서 3.5%로 내린 바 있다. 금융연구원(3.4%)과 삼성경제연구소(3.6%)는 아직 공식적으로 수정치 전망을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기관 모두 ‘하향조정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밖에 노무라(2.7%), UBS(2.6%), 뱅크오브아메리카(3%), 도이치방크(3.2%), 모건스탠리(3.2%) 등 외국계 투자은행(IB)들도 3% 내외의 저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국내 최고경영자 264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경제성장 전망에 대해 86%가 ‘위기 해소가 지연돼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 추세를 지속한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 4.2%를 기록한 이후 4분기 연속 떨어져 올해 1분기에는 2.8%까지 내려온 상태다.

◆ 수출·재정·소비·투자 ‥“어느 한 곳 기댈데가 없다”

이 같은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의 핵심 배경은 수출이 예상보다 빠르게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초까지만 해도 상당수 연구기관은 두자릿수의 수출 증가율을 예상했다. 현대경제연구원(14%), 삼성경제연구소(10.9%), KDI(10%), LG경제연구소(7.8%) 등 낙관적인 관측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수출은 1%도 안 되는 증가율을 보였다. 올 초 유로존 위기가 장기화하며 세계 경기 회복세가 다시 꺾인 탓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수출 증가율이 지난해보다 4.5% 늘어나는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LG경제연구원의 증가율 전망치는 2.5%에 불과하다. 지난달 한국은행과 KDI는 각각 4.8, 6.6%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리스 총선 이전의 전망치라 최근의 악화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수치로 해석된다.

기계수주 등 투자의 선행지표들의 회복세도 한풀 꺾이는 모습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설비투자는 6% 늘어나 지난해보다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겠지만 건설투자는 2.1%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LG경제연구소는 올해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는 각각 4.2%와 0.2%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KDI와 한국은행의 설비투자가 6.2%, 6.4% 늘어날 것으로 다소 낙관적인 입장이다.

정부가 기대했던 소비회복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민간소비가 2.1% 늘어나는데 그쳐 지난해(2.3%)보다 위축될 것으로 전망했다. LG경제연구소의 예상도 2.8%로 경제회복을 이끌 만큼 회복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다.

◆ L자형 경기 흐름 고개든다

더 우려되는 것은 내년 경제 성장률도 이 같은 저성장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은 내년 전망치로 3.3%로 제시했다. 현재까지 국내외 연구기관 중 가장 비관적인 수치다. 내년 상반기 3.0%, 하반기 3.3%의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3.5%로 예상한다. OECD는 지난달 4.3%에서 4%로 하향 조정했다. IMF는 현재 내년도 한국 경제성장률을 4%로 잡고 있다. 하지만 호아 코르 미션단장은 “당초 예상보다 세계 경제의 약세가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 역시 성장둔화가 예상보다 더욱 길어지고 있다”며 하향조정에 대해 시사한 바 있다.

앞서 KDI와 한국은행은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4.1%, 4.2%로 제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가 뚜렷한 회복신호를 보이지 않고 있어 하향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