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저축은행 명칭을 바꾸는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과거 정부가 '은행'이라는 이름을 쓰도록 허용하고, 대형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저축은행 문제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17일 "저축은행도 아니고 상호신용금고도 아닌 새로운 이름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이름을 바꾸되 2002년까지 불렀던 상호신용금고로 되돌아가지 않고 제3 명칭을 고안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는 것이다. 명칭을 바꾸기 위해서는 저축은행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19대 국회가 개원하면 본격적인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금고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금융 당국은 "10년 전 폐기한 명칭인 상호신용금고로 되돌아가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미래 지향적인 가치를 담아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금고(金庫)라는 표현이 일본어 잔재라는 지적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금융 당국 내부에선 저축은행이나 신용금고 이외의 새 이름을 짓되 '서민'이라는 글자를 맨 앞에 박자는 의견이 대두하고 있다. 서민의 금융 편의를 도모해야 한다는 본분을 강조하기 위해 '○○서민저축은행' '○○서민금융회사'와 같은 명칭이 어떠냐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회사 명칭에 '서민'이라는 글자를 넣는 것이 어색하다거나, 서민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시비가 생길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름에서 '은행'이 빠지거나 거래 대상을 '서민'으로 한정하는 인상을 줄 경우 고객들의 외면으로 저축은행의 경영난이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국은 국민을 대상으로 이름을 공모하거나 브랜드 컨설팅 업체에 의뢰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10년 전 상호신용금고를 저축은행으로 개명할 당시 금융감독위원회는 신용은행·상호은행·지역은행·서민은행·타운뱅크 등 다양한 명칭을 검토한 바 있다.

국회, '지방은행'과 '신용금고'로 이원화 제시

금융 당국과는 별도로 국회에서도 저축은행 이름 바꾸기 논의가 물밑에서 일어나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일부 초선 의원이 본인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로 판단하고 전문가들로부터 저축은행의 새 이름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개별 저축은행의 재무 상태에 따라 '지방은행'과 '신용금고'로 명칭을 이원화하자고 건의하는 보고서를 냈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 등이 일정 수준 이상인 저축은행에는 지방은행이라는 이름을 붙여 외환(外換)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은행과 똑같이 처리할 수 있게 허용하고, 나머지는 신용금고로 전환시켜 영업 지역을 제한하고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금지하자는 내용이다. 일본은 저축은행에 '제2 지방은행'이라는 명칭을 붙여주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지점 3138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