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에서부터 주류(酒類) 전 부문에 걸친 풀 라인업을 갖춰라."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2월 이재혁 당시 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부사장)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이튿날 이재혁 실장은 사장으로 승진하며 주요 계열사인 롯데칠성의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은 그룹 계열사들의 사업 내용과 정책을 조정하는 요직으로 신 회장과 수시로 계열사 사업 계획을 논의하게 되는 자리다. 신 회장이 그런 이 사장을 그룹의 주류·음료 사업을 총괄하는 계열사 대표로 보낸 것은 '숙원 사업'을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롯데그룹의 한 임원은 "일본에서 성장한 신 회장은 아사히·삿포로·기린 등 세계적인 맥주 브랜드가 일본에는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없다는 것을 늘 아쉽게 생각해 왔다"며, "생수에서부터 탄산·주스·차음료, 소주(처음처럼), 위스키(스카치블루) 등을 다 생산하지만 정작 세계적인 경쟁력이 부족한 맥주사업에 진출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의 꿈은 이제 실현되게 됐다. 롯데칠성이 8일 국세청으로부터 맥주 제조업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롯데는 이미 지난 1월 충주시와 투자협약을 체결하고 충주 신산업단지에 33만㎡, 연산 5억L 규모의 맥주 공장을 짓는 작업에 착수했다.

롯데 신동빈 회장(왼쪽)과 이재혁 롯데칠성음료 대표가 지난달 롯데가 일본 수출을 지원하는‘서울장수막걸리’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주류 업계에서는 신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이재혁 사장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이 사장은 패스트푸드 업계 전체가 심각한 불황을 겪던 2006년 초 롯데리아 대표이사(전무)를 맡아 2년 만에 완전히 사업을 정상화했고, 엔제리너스라는 커피 전문점 사업을 벌여 롯데리아의 수익성도 크게 개선했다. 2010년 1조7000억원이었던 롯데칠성(롯데주류BG 포함)의 매출도 지난해 2조원으로 20% 가까이 늘렸고, 충북 소주 인수, 중국 백두산 생수 개발·수입 사업 등 공격경영을 계속하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해 10월 처음처럼 소주를 만드는 롯데주류BG를 롯데칠성에 합병시키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3조5000억원 규모인 국내 맥주 시장은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가 점유율 1% 안팎 차이로 양분하고 있다. 한 주류 업체의 임원은 "음료까지 아우르는 탄탄한 유통망이 있고, 맥주를 뺀 다른 모든 주류에서 영업을 해온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롯데가 맥주 시장에 상당한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롯데가 사업 파트너인 일본 아사히맥주로부터 제조 기술 측면의 도움을 받는다면 시장 파괴력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수입 맥주가 여전히 시장점유율 4%를 밑돌 만큼 보수적인 우리나라 소비자의 입맛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시장점유율을 1%P 올리는 데 300억~400억원의 마케팅 비용이 드는 시장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