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라이너트 지음, 김병화 옮김|500쪽|2만원|부키

저자는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됐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지.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의 격차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뿐만 아니라 그 격차는 계속 더 벌어지고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개발도상국들의 가난은 기업가 정신의 부족, 법적·제도적 미비, 개인적·환경적 약점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또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등 경제이론을 통해 자유무역과 규제철폐가 경제 발전의 지름길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 시절 자신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잊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제조업 육성을 위한 산업 정책에 관한 이론을 주장한 독일의 경제학 이론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저서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한 때 아예 사라져 버렸다.

저자가 말하는 부자나라가 되는 비결은 제조업 보호·육성이다.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485년 헨리 7세가 즉위한 뒤 영국은 제조업을 적극적으로 보호했고, 이는 1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국가가 제조업 분야를 보호하는 기간은 현재 부자나라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간이었다. 독일이 그 뒤를 이었고 미국도 150년간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미국 소기업 관리국은 매년 미국의 개인 회사를 지원하는 대출금과 보증금으로 200만달러가 넘는 연방기금을 사용한다.

반면 스페인은 제조업이 아닌 올리브유와 포도주 같은 농업 생산을 외국과의 경쟁으로부터 보호했다.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많은 양의 금과 은이 스페인으로 흘러들어왔지만 제조업 분야 투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16세기가 끝날 무렵 스페인은 심각하게 탈 산업화됐고 20세기 초반까지도 유럽에서도 가장 못사는 나라 대열에 남았다.

이처럼 일정 기간 국내 산업 보호는 필요하고 자유 무역이 오히려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하지만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 워싱턴 기관들은 일관되게 제3세계에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기관을 세우지 못하도록 '조건부 조항'을 부과하는 정책을 펼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들은 한 번도 따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절대 따르지 않을 이론을 가난한 나라에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는 몽골을 예로 든다. 몽골은 독립 후 다양한 산업을 성공적으로 구축,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을 1940년 60%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16%로 끌어내렸다. 이런 몽골에 세계은행은 산업 보호를 없애고 자유 무역의 기틀을 잡고 각종 규제를 없앨 것을 권유했다. 세계은행의 '모범생'이 된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경제를 개방한 이후 4년 만에 국내 생산물량은 90% 가까이 감소했고 실질 임금은 절반으로 줄었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이자율은 35%까지 치솟았다.

저자는 관세를 철폐했다가 피해를 본 국가의 사례도 강조한다. 에콰도르는 바나나 생산에 집중하고 산업 관세를 폐지하면 원조를 해주겠다는 선진국들의 약속을 믿고 이에 따랐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은 그리스와 과거 유럽의 식민지였던 카리브해 연안 국가 바나나 생산자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바나나에 높은 수입 관세를 물렸다. 약속했던 원조도 없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페루는 면, 레바논은 사과의 관세철폐로 농업 생산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리카도의 경제모형과 현실은 같은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숙련도의 일자리, 즉 돈이 되는 일자리는 부국이 모두 차지해 버리고 저숙련도의 일자리는 가난한 나라에 분배돼 버린다. 가난한 나라는 더는 기계화하지 않거나 혁신할 수 없는 경제활동에 집중하고 결국 선진국은 가난한 나라에 혁신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안데스 지역 학교의 건립을 돕기 위해 페루를 방문했을 때 대부분의 페루 노동자들이 노르웨이(저자의 출신지) 노동자들보다 일 솜씨가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지만 그들이 받는 임금에 큰 차이가 있던 점에 의문을 갖기 시작,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런 저자에 대해 장하준 교수는 "경제학 부문에 인간문화재 제도가 있다면 그 1호"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