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의 고공행진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경상수지 흑자기조가 24개월만에 깨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외환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의 원화 강세(달러 대비 원화 환율 하락) 기조가 정부의 올해 최대 과제인 서민 물가 안정에는 도움을 주지만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을 생각하면 수출 경쟁력을 낮추는 원화 강세 기조를 마냥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유럽 재정위기 등에 따른 국제시장의 불안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상수지 적자 기조가 현실화하면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외환당국의 셈법이 복잡해질 수 밖에 없는 시점이다.

◆ 한달 새 30원 하락한 원화 환율···경상수지 악화 부담↑

새해들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일방적인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말 달러당 1151원에서 거래를 마친 원화 환율은 지난 27일 1123.2원으로 마감했다. 20거래일만에 30원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유럽재정위기 불안감이 완화되면서 외국인의 주식 채권 투자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된 결과다.

문제는 원화 강세 흐름과 경상수지 악화 가능성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새해들어 20일까지 20억달러 내외의 적자를 기록중인 무역수지를 감안할 때 1월 경상수지가 24개월만에 적자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유럽위기 여파에 따른 수출 부진과 설연휴에 의한 관광수지 적자 확대가 주 요인으로 꼽힌다.

'경상수지 흑자기조 유지'는 신제윤 기획재정부 1차관이 이끄는 외환정책라인이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정책 기조다. 우리나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경상수지 적자기조가 나타나면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줘서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율 변동성이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위협하는 정도로 커져서는 안된다는 게 당국의 인식이다. 그동안 외환당국이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에 도움을 주는 고환율 정책을 선호해 온 배경은 여기에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최근의 원화 강세 흐름이 경상수지에 미칠 영향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에 나섰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시장인 유럽과 중국의 경기둔화로 인해 수출 증가율이 급격히 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원화 강세로 인한 서비스 수지 적자기조의 만성화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외환정책의 또 다른 축인 한국은행은 최근 해외 여행과 해외 송급 수요 증가에 원화 강세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설 연휴동안 집계된 출국자는 27만명 가량으로 지난해 설 연휴 기간보다 8.7% 가량 증가한 것이 이런 분석의 근거로 제시됐다.

◆ 원화 강세 억제할만한 마땅한 수단 없는 게 고민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최근의 원화강세는 한국 경제 펀더멘탈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높은 신뢰 수준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는 게 당국의 고민이다.

새해들어 외국인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5조원 가량을 순매수했다. 당국이 주시하는 외국인 채권 투자도 순매수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새해들어 순매수 금액은 1조2000억원 가량이다. 이중 만기 상환으로 인한 재투자 자금을 뺀 순투자 금액도 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경제사정이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양호한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 행렬을 인위적으로 억제할 만한 명분과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게 당국의 속내다.

더구나 소비자의 향후 1년간 물가 전망을 나타내는 기대인플레이션은 7월째 4%대의 고공행진이다. 그나마 최근의 원화 강세가 이란 핵개발 제제 등의 영향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110달러 수준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수입물가 상승압력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원화 강세 흐름이 강해진 지난해 11월 수입물가 상승률(전월비 기준)은 1.6% 하락했고 12월에도 0.2% 상승에 그쳤다.

이같은 점들은 당국이 과거와 같이 특정 환율 레벨을 정해놓고 그 수준을 사수하기 위해 시장 개입에 나서는 방식의 정책을 구사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재정부 한 관계자는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경상수지 등 실물 경기 지표를 악화시킬 정도로 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기본 스탠스"라면서 "최근의 원화강세가 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적절한 대응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