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김소영(가명ㆍ30)씨. 김 씨는 1년간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토익점수도 만점에 가까울 정도로 스펙이 좋다. 그러나 김 씨는 대기업 취업에 거듭 실패하고 지금은 월 150만원을 받는 동네 영어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 씨는 요즘 대학교 동창들을 만날 때면 자괴감이 든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저마다 본인 월급과 성과급이 적다고 투덜거리는데 김 씨의 월급은 이들에 비해 절반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21일 조선비즈와 조선일보, 현대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일자리 질을 분석한 결과, 일자리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1년간 임금수준별 일자리 추이를 산출해 보면 전체 일자리 중 중간일자리의 비중은 2001년 43.5%에서 지난해 35.4%로 8.1%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상위일자리 비중은 같은 기간 동안 33.3%에서 37.9%로 4.6%포인트 증가했고 하위일자리 비중도 23.2%에서 26.7%로 3.5% 포인트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자리 증가수는 41만5000개로 지난 2004년(41만8000개) 이후 7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 결과 고용률도 2010년 70.1%에서 2011년 70.5%로 0.4%포인트 상승했고 실업률은 4.0%에서 3.6%로 하락했다. 그러나 일자리의 양만 늘었지 질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게 이번 조사로 입증된 것이다.

◆ 일자리도 양극화…중간 일자리가 사라진다

중산층을 두텁게 만드는 중간일자리의 수가 늘어나야 사회 구조가 안정화된다. 그러나 이번 조사는 그 반대의 추세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간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중산층도 얇아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일자리를 갖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상위일자리와 직장은 있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워킹푸어(working poor)를 양산하는 하위 일자리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중간일자리 정의는 중위(中位)임금의 67~133%까지다. 그 이상은 상위일자리, 이하는 하위일자리로 분류된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일자리를 5등급으로 분류했을 때 상위(임금계층 0~20%)와 하위 일자리(임금계층 80~100%)는 각각 101만1000개, 105만3000개 증가했다. 반면 중간(임금계층 40~60%)일자리는 60만5000개 늘어나는데 그쳤다.

연구를 진행한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위 및 하위일자리가 동시에 늘고 중간 일자리는 줄면서 일자리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통계로 증명됐다"고 설명했다.

◆ 중간일자리 감소는 청년층 하위층으로 몰아

가장 높아야 하는 중간일자리 비중이 지난해 2위(35.4%)로 떨어지고 상위일자리 비중(37.9%)이 1위로 올라섰다. 상위 일자리 비중의 증가는 당장은 좋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로 작동할 수 있다.

상위일자리의 경우 대부분 관리직이나 전문직이다. 소수 청년층을 제외하면 대부분 40대 이상의 중년층으로 청년시절 중간일자리로 진입한 후 경력을 쌓으며 계층이동을 통해 상위일자리로 이동한 형태다.

그러나 지금처럼 청년층이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중간일자리가 줄면서 계층 이동이 어려운 하위일자리로 흡수되는 추세가 계속되면 어느 시점부터는 상위일자리는 줄어들고 하위일자리만 두터워 지게 되는 것이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중간일자리 비중이 감소하면서 중산층 비중이 줄어들고 근로 신분 상승의 사다리도 취약해지고 있다"며 "중산층 비중이 2000년부터 2010년까지 71.7%에서 67.5%로 줄고, 빈곤층 비중이 19%에서 20%로 증가하는 것은 일자리 창출의 질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준협 연구위원은 "사회적 빈곤의 문제와 불평등의 문제는 단순히 소득의 불균형이 아닌 노동시장의 양극화 구조가 심화됨에 따라 나타나는 문제"라며 "빈곤층 또는 취약계층의 상당수가 나쁜 일자리에 종사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 구조가 심화되는 것이 사회적 빈곤과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 일자리 양보다 질에 신경써야

일자리 양극화가 심화되는 만큼 일자리 양보다는 질을 높이는 정부정책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단순히 고용만 늘린다고 인센티브를 주기 보다는 양질의 중간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을 고용창출 모범기업으로 선정하고 과감한 세제 혜택과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또 저임금 근로자들이 중간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준협 연구위원은 "중간일자리에 필요한 숙련 기술 습득을 위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고용지원센터 등을 통해 비숙련, 저임금 노동자들을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며 "교육 프로그램의 실질적인 효과를 위해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고 멘토링 시스템을 도입해 개별 수준과 역량에 맞는 교육 훈련을 실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