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조직개편을 앞두고 있는 한국전력이 수익성을 위해 스마트그리드(Smart Grid·지능형전력망) 사업을 축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를 스마트그리드 활성화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정부 정책에 역주행하는 것이다.

12일 전력업계와 스마트그리드업계 등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이달 중으로 실시할 예정인 조직개편에서 스마트그리드추진실을 없애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전은 대신 원자력수출본부와 해외사업본부를 강화하고, 신재생에너지사업과 인수합병(M&A) 관련 팀을 확대하는 등 고질적인 적자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향으로 조직개편을 논의 중이다. 한전과 지식경제부는 아직 확정된 내용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업계에서는 사실상 한전이 경영효율화를 위해 스마트그리드 사업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전은 스마트그리드를 활성화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제주 실증단지 5개 분야에 참여하고 있다. 한전이 국내 전력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점을 감안할 때, 스마트그리드 정책을 한전이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스마트그리드 사업은 당장 성과를 내기 힘들기 때문에 막대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한전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사업이었다. 특히 김쌍수 전 한전 사장이 주주들에게 소송까지 당하자 최근에는 한전 내부에서 수익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이번 조직개편에서 스마트그리드 축소 논의가 나오는 것도 같은 연장선상에서다.

한전이 스마트그리드추진실을 없애고 사업을 축소하게 되면 정부의 스마트그리드 활성화 전략에도 차질이 생긴다. 정부는 올해 스마트그리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투자계획과 제도 등을 발표할 계획이다. 우선 스마트그리드 사업의 추진방향을 정리한 '5개년 지능형전력망 기본계획'을 조만간 발표한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사업계획과 예산, 관련 제도의 정비 등이 포함된다. 또 제주 실증단지를 확대해 2016년까지 광역권별로 스마트그리드 거점지구를 조성하는 사업도 올해부터 시작한다. 제주 실증단지 사업도 2단계에 접어든 상태다.

이처럼 정부가 스마트그리드 활성화에 나서고 있지만, 콘트롤타워 격인 한전이 발을 빼면 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스마트그리드 사업에 진출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스마트그리드 사업이 당장 돈이 안 되는 것은 사업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며 "그런데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에 참여했는데 전력산업을 책임지는 한전이 혼자서 발을 빼는 것은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스마트그리드 사업이 속도를 내야 할 시점에 제동을 거는 한전의 행태를 지적했다. 한 전력산업 전문가는 "스마트그리드는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분야인데, 한전이 사장이 바뀐 뒤로는 단기적인 이익에 집중하면서 스마트그리드를 포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