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경기 인식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대외 경제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 등 주요 서방국가들의 이란산(産) 원유 수입 제재 움직임이 국내 경제여건의 불확실성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 안팎에서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정부 전망치인 3%후반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란의 핵개발로 인한 갈등으로 중동정세가 불안해지면서 지난해 하반기 하향 안정세를 나타냈던 국제유가가 들썩이는 데 주목하는 분위기다.

미국이 이란산(産) 원유 수입 금지 조치를 발표한 이후 두바이유 기준 국제유가는 배럴당 110달러선을 넘어섰다. 미국의 제재조치에 반발한 이란 정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전면화될 경우 국제유가는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예상대로 국제유가 폭등이 재연될 경우 '3% 후반대 성장, 3%초반대 물가'로 제시된 정부의 거시경제 전망은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 성장전망 어두워진 정부·KDI··· "중동 정세불안은 현재 리스크"

예전에 비해 한층 어두워진 정부의 경기인식은 지난 5일 발표된 '최근의 경제동향(그린북)'에서 잘 드러나 있다. 기획재정부는 경기 종합평가에서 "중동정세 불안으로 인한 원유가격 상승 우려 등으로 경제여건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재정부는 지난달 까지는 이 대목에서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경제여건의 불확실성'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표현이 '확대되고 있다'로 바뀐 것이다. 유럽 위기에 겹친 중동정세 불안이 국내 경기에 전방위적인 악재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경기둔화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에 경제정책 방향을 자문하는 KDI(한국개발연구원)도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를 한층 더 강화했다. KDI는 8일 발표한 1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수출 증가세가 완만히 둔화되고 내수도 다소 약화되고 있는 등 전반적으로 경기가 둔화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경기 둔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란 제재 이후 국제유가 상승세가 재개되는 것은 우리 경제에 전방위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재적인 리스크'라고 할 수 있다"면서 "정부가 내놨던 당초 전망보다 경제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 이란發 유가상승, 추경 카드로 이어지나

정부가 최근들어 추가경정 예산편성에 나설 수 있음을 공식화한 것도 이런 경기 인식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재정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경제성장률이 1~2%대로 현저히 하락하는 등 유럽 재정위기 악화에 따른 실물경기가 급격히 둔화될 경우에는 일자리 창출이나 저소득층 복지, 중소기업ㆍ자영업자 지원 등의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며 사실상 추경 편성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재정건전성 확보에 방점을 찍던 정부가 추경 편성 등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유럽재정위기와 중동정세 불안이 겹칠 경우 3% 이하 저(低)성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우리나라 물가는 0.2% 포인트 상승하고, 경제성장률은 반대로 0.2% 포인트 하락한다. 이란 제재로 국제유가가 현재보다 50% 가량 상승한 배럴당 150달러에 이르게 될 경우 올해 우리경제의 성장률은 정부전망치 3.7%에서 2.7%로 내려가고, 물가상승률은 3.3%에서 4.3%로 치솟게 된다.

그러나 추경 편성에 대한 신중론도 만만찮다. 이란 제재 등으로 성장둔화 가능성이 커졌지만 상저하고(上低下高)형 경기 회복세가 기대되는 상황에서 추경 카드를 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1분기에는 1.8%에 그치지만 3분기에는 3.3%, 4분기에는 4.5% 될 것으로 예측했다.

재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실물경기 위축이 고용창출력을 크게 저하시킬 정도면 추경 카드를 쓸지 고민해보겠다는 게 정부의 정확한 입장"이라면서 "1분기 저점으로 경기가 점차 회복되는 흐름에서 추경 등을 사용해야 할지는 신중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