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1999년말 214조원에서 지난해 9월말 892조원으로 늘어나는 동안 정부는 방관했다. 엄밀히 말하면 가계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가계 대출을 촉진하는 정책도 썼다. 정부에게는 가계부채 문제보다 ‘경기’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당장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가계부채는 관심 밖이었다. 가계부채 문제에 있어서 정부가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배경이다.

가계부채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팽창해 소비를 촉진하고 부동산 경기를 떠받쳤다. 그랬던 가계부채가 이제는 이자 부담 압박으로 돌아와 오히려 소비를 위축시키고 경제 전반과 금융시스템에 큰 리스크로 잠재돼 있다.

하지만 정부의 종합대책은 한참 늦었다. 정부는 지난해 6월에야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을 내놨다. 그 내용의 골자는 가계부채 증가율을 경상성장률(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 수준으로 억제하고 주택담보대출중 10%미만인 ‘고정금리-비거치식 분할상환’ 형태를 2016년까지 30%로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고정금리 분할상환 대출의 확대는 그동안 가계부채 감소를 가로막고 있었던 ‘변동금리-거치식 만기일시상환’이라는 고질적인 대출구조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만기일시상환 대출은 이자만 갚고 원금상환을 계속 미룰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해 왔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고민 흔적이 보이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더 치열하게 가계부채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가계부채가 가계나 금융권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경제 전체가 직면한 문제인 만큼 정부가 범정부 차원에서 세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부 전 부처 뿐 아니라 은행과 2금융권, 지방자치단체, 정치권까지 망라하는 진정한 의미의 종합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 정부 전 부처·은행·2금융권·지자체 함께 대응하라

"금융 쪽에서 해야 할 대책은 다 내놨다. 앞으로 더 한다면 정부 전 부처 차원에서 해야 한다"

지난 6월말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을 내놓고 난 후 금융감독당국의 한 관계자가 한 말이다. 금융위원회는 새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가계부채 대책은 6월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실었다. 가계 대출 증가율을 경상성장률 수준에서 억제하고 경기 악화 등으로 대출이 더 필요한 취약계층은 3대 서민금융인 새희망홀씨, 햇살론, 미소금융을 늘림으로써 대처하면 된다는 게 금융위의 생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금융위의 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시각이 많다. 당장 은행 주택담보대출 중 고정금리·비거치식 분할상환 형태를 2016년까지 30%로 높이겠다고 했지만 그 유인은 부족하다. 정부가 제시한 유인은 고정금리·비거치식 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소득공제를 1000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늘리는 것 뿐이다. 고객들은 조금이라도 금리가 싼 변동금리를 선호한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그동안 금리변동 리스크를 고객에게 떠넘겨 왔는데 고정금리로 전환할 이유가 없다. 고객들에게 당장 '지금부터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무리다. 정부가 더 진전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 전 부처가 범정부 차원에서 가계부채 문제에 동참해야 한다. 김진성 KB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양극화로 저소득층이 늘어나는데 복지가 안되니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며 "주거·의료·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상당 부분 사회보장 시스템이 어떻게 돼 있느냐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가 저소득층이나 신용불량자에 대한 임대주택 공급을 크게 늘려 나가고 교육이나 의료에 들어가는 비용도 줄여줄 수 있는 대책도 가계부채 대책에 포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농어민의 부채 문제를, 교육과학부는 대학생의 학자금 부채 문제를 더 고민해야 하고 고용노동부는 신용불량자의 직업교육에 더욱 신경을 쓰는 등 전 부처가 나서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도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1:1 매칭 저축인 '희망플러스 통장' 사업을 하고 있다. 2년 동안 매월 5만~10만원을 저축하면 똑같은 금액을 입금해줘 사업자금 등 목돈을 형성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사업 대상자들은 저축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좀 더 계획적인 소비를 할 수 있고 자존감이 상승한다고 입을 모은다. 은행권과 2금융권은 다중채무자 해결을 위해 함께 협의체를 구성하고 다중채무자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

◆ 가계부채 위험 첫 단계 진입‥올해 부실 양산 가능성

정부의 올해 최대 과제로 떠오른 가계부채 대책의 목표는 연착륙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이 가장 중요하다. 병의 증세가 심각한데 약만 먹는 안이한 처방을 내리는 것도 위험하지만 감기에 불과한데 수술을 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가 경제에 충격을 주는 단계를 대략 두단계로 보고 있다. 첫번째는 가계부채 부담이 늘어 소비가 위축되고 부채를 상환하지 못한 가계의 파산이 본격화되는 단계다. 두번째는 이러한 가계 파산이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져 금융시스템과 국가경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단계다. 우리나라의 카드사태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두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이를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문제는 첫번째 단계의 어느지점에 와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유럽재정위기 등으로 올해 경제가 급랭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가계의 부채상환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부실이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 근본처방-타깃처방 투트랙 병행해야‥공적부문 개입까지 생각해야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처방과 함께 취약부문에 대한 타깃처방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취약부문은 빚 상환능력이 한계상황에 다다른 저소득층과 젊은층, 영세자영업자다. 경제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라 올해도 생계를 위한 자금수요가 급속히 늘 수 있어 서민금융 공급 확대 등 세심한 대응책 마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 사태악화를 막기 위해 공적부문의 과감한 개입이 필요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중소업자나 자영업자가 문을 닫게 되면 수많은 실업자가 생겨나 결국 재정에서 부담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인데, 특히 서민금융에서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인 처방은 소득 양극화를 막을 수 있는 경제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보면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빚을 진 사람들이 돈을 벌어 빚을 갚도록 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녹록치 않다.

따라서 방향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고환율 정책 등을 통해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덩달아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총체적으로 경기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이른바 ‘트리클 다운’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오히려 자원 배분 및 소득의 양극화로 ‘가계소득의 감소→내수 부진→투자부진→고용 침체’라는 악순환이 심화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와 동반성장의 문제가 대두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하나의 궁극적인 방향은 금리의 정상화라고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당장 금리를 올리면 가계부채의 부실화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통화당국이 저금리 정책을 너무 장기간 유지한 것이 가계부채 급증의 주된 원인이라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민간 경제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지금 당장 금리를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경기 불확실성이 완화되면 바로 금리인상이 재개될 것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는 게 중앙은행의 임무”라면서 “가계부채 증가속도를 둔화시키기 위해서는 가계로 하여금 빚을 냈을 때 비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인식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