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축대부조합 부실사태, 북유럽 3국의 금융위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과도한 가계부채로 촉발된 대표적인 금융위기 사례들이다. 발생 배경은 제각각이지만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다. 가계부채의 뇌관이 터지면 국가경제, 더나아가 세계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출발점은 정부의 경기부양을 위한 금융규제 완화정책이다. 그 결과 불어난 유동성은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가 거품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이 개인들의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묻지마 대출에 나서는 도덕적 해이를 보인 것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거품은 꺼지기 마련이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가계대출이 부실해졌고 그 부실은 금융회사 연쇄 파산과 실물경제 냉각으로 일파만파 번졌다. 결국 대규모 재정투입으로 빚잔치를 벌여 사태를 수습하고 만다.

◆ 미국 저축대부조합 부실 사태

1970년대 우리나라의 저축은행과 같은 미국의 저축대부조합(S&L)은 일반서민들을 상대로 주로 단기의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는 장기 고금리인 주택자금대출을 통해 예대마진을 향유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국가가 금리를 제어하고 있었던 만큼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1973년과 1978년 두번의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유가가 급등,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당시 물가상승률은 15%에 이를 정도였다. 이 시기 등장한 폴 볼커 당시 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정책금리를 20%까지 올리는 초(超) 고금리 정책을 펼친다.

금리가 급등하자 단기 금리를 운영하던 S&L들은 비상이 걸렸다. 금리가 급등하면서 극심한 역(逆)예대마진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S&L을 구하기 위해 미국은 은행법을 개정한다. 우선 S&L의 예금자 보험액을 4만달러에서 10만달러로 확대하는 동시에 예금금리 상한규제를 폐지해 S&L이 적극적인 수신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또 자기자본비율도 완화해줬다. S&L들은 역마진을 해소하기 위해 고수익 분야인 상업용 부동산과 정크본드 등 고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다.

하지만 1988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수백개의 S&L이 부실화했고 지급불능 사태를 맞았다. 1989년 가을 S&L의 지급불능 규모는 무려 2000억 달러에 달했다. 결국 미국 정부는 정리신탁공사를 통해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당시 전국 4000여개 S&L 가운데 1137개 조합이 도산했다. 미국 정부가 쏟아부은 공적자금은 이자 비용을 포함해 4900억 달러로 추정된다. 금융감독 부실이 화를 키운 것이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대출부실이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진 것 모두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저축은행 사태와 같다.

◆ 북유럽 3국의 금융위기

노르웨이와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3국도 1980년대 금리자유화와 규제완화 과정에서 금융위기를 맞은 사례다. 북유럽 3국은 1980년대 금리자유화와 금융규제 완화를 통한 해외 차입이 늘어나면서 유동성이 불어났고 자산가격이 상승했다. 자산가격 상승은 실물 경기의 호황으로 이어졌고 이를 기반으로 은행들은 가계와 기업에 대출을 늘리기 시작했다. 노르웨이의 경우 1982년 기준으로 GDP 대비 32%였던 은행의 민간부문 대출이 1987년에는 60%가 넘을 정도로 급증했다. 스웨덴은 1985년부터 1990년까지 민간부문에 대한 대출이 연 평균 20%가까이 상승했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로 유럽의 금리가 상승하고 경기가 둔화되자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부동산 관련 대출의 담보가치가 하락했고 가계 대출의 부실이 증가하면서 금융기관의 위기로 번졌다.

금융기관이 부실화되자 금융위기는 실물경제로 확산됐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스웨덴의 실질GDP 손실은 5.3%를 기록했고 핀란드의 경우 10.4%에 달했다. 결국 북유럽 3국은 엄청난 재정지원을 통해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할 수 있었다. 당시 노르웨이는 GDP대비 3%, 스웨덴은 5.2%, 핀란드는 7.4%를 각각 구제금융 비용으로 지출했다.

◆ 일본 장기불황

일본의 장기불황 사례는 거품 붕괴의 가공할 위협을 보여주는 전형이다.

폴 볼커 FRB 전 의장의 초 고금리 정책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잡았지만 동시에 달러 가치를 상승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 일본의 엔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면서 환율 혜택으로 일본의 대미 수출이 급증한다. 결국 레이건 정부는 1985년 9월 미국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G5회담에서 일본 엔화의 평가절상을 관철시킨다.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치가 상승, 수출이 둔화될 것을 우려한 일본 정부는 수출 기업들이 돈을 더 쉽게 빌릴 수 있도록 금융완화정책 및 확장적 통화정책을 편다. 당시 일본 중앙은행은 10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 당시로서는 초 저금리인 2.5%까지 떨어뜨렸다. 이로인해 일본에는 돈이 넘쳤지만 마땅히 돈이 들어갈 곳은 부동산 뿐이었다.

일본의 유동성 확대는 엄청난 부동산 가격 급등과 고물가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도쿄의 땅을 다 팔면 미국의 모든 땅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자산가격이 급등하고 유동성이 확대되자 일본 국민들의 소비도 늘었다. 일본의 주가 역시 급등했다. 엔고와 임금 상승으로 수출은 둔화되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오르는 그야말로 거품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거품은 붕괴됐다. 엄청난 부동산 급등과 고물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려 통화 공급을 조이는 정책을 편다. 하지만 갑작스런 통화 긴축 정책은 순식간에 자금 흐름을 경직시켰고 주가 폭락과 함께 부동산 거품의 붕괴로 이어졌다.

거품이 꺼지자 부동산에 기대던 금융기관들이 연이어 도산하기 시작했다. 오르기만 하는 부동산을 사기위해 무리해서 돈을 빌렸지만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면서 빚을 갚을 도리가 없었고 대출 부실은 결국 금융기관 부실로 번졌다. 그 결과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총 142개의 금융기관이 도산했고 이 중 89개는 1998년과 1999년에 문을 닫았다. 금융기관의 부실은 실물경제로 이어졌고 지금까지도 일본은 1% 내외의 경제성장률과 소비증가율에 고통받고 있다.

◆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아직까지도 그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같은 패턴이다.

2000년대 초반 IT버블이 붕괴되면서 미국은 금융완화 정책을 펼친다. 저금리 확장 통화 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했고 시중에 남는 돈들은 부동산으로 몰렸다. 부동산 가격이 급증하자 금융기관들은 너도 나도 돈을 빌려주며 부동산을 사라고 권유했다. 신용이 양호한 사람들에게만 빌려주던 금융기관 대출은 점점 저신용자로 확대되고 대출 규모도 커졌다. 심지어 집값의 100%는 물론 그에 따른 수수료까지 빌려주는 대출 프로그램도 등장했을 정도다.

여기에 과도한 금융완화 정책은 실체를 알 수 없는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들어냈다. 금융기관들이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는 이를 반복적으로 증권화해 수많은 파생상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미국의 일반 부동산 대출 상품이 여러 단계의 파생상품을 거쳐 우리나라 은행의 금융상품으로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졌고 2008년 9월 자산규모로 미국의 4번째 규모였던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기에 이르렀다. 곧이어 전 세계의 금융위기로 일파만파 퍼지는 심각한 결과를 나왔다. IMF(국제통화기금)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 금융기관 손실이 2010년말 4조54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